자못 산을 많이 다녔어도 꽤 유명한 산인데 아직 가 보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무등산이 그런 곳입니다. 무등산은 그 사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됐고 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네요. 방하 도전트렉 덕택에 처음 경험하게 됩니다.


트렉일자: 2021년 10월 30(토) - 31(일)
트렉코스: 아래 코스 지도 참조

 

   (10/30일. 아래 왼쪽 그림) 원효분소 → 늦재 → 토끼등 → 중머리재 → 중봉 → 서석대 ​→ 입석대 → 장불재 → 규봉암 → 신선대 → 꼬막재 → 원효분소. 약 18km 코스.

   (10/31일. 아래 오른쪽 그림) 원효분소 → 꼬막재 → 장불재 → 낙타봉 → 장불재 → 꼬막재 → 원효분소. 약 18km의 코스.

날씨: 30일은 종일 흐린 날씨로 트렉중 살짝 비를 만나기도. 체감온도도 중턱부터 정상부위에선 7-8도 정도의 쌀쌀한 날씨. 31일은 종일 맑은 날씨로 기온도 같은 고도에서 15도 정도의 온화한 날씨.


방하 도전트렉에서 주어지는 과제는 토요일에 수행하는 하루짜리 코스입니다. 이번에도 실제 과제는 위 왼쪽 그림의 30일 하루 환종주같은 코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이어 31일에도 트렉한 기록을 추가합니다. 사실 전남 광주까지는 먼거리라 시간과 돈도 들고 또 광주 화순 담양에 걸쳐 있는 큰 산을 경험하는게 한번으로는 좀 아쉽고, 무엇보다 31일 일요일의 날싸예보가 너무 유혹적이었습니다.

31일 코스는 30일 코스를 타면서 눈여겨 봐두었던 곳(장불재 - 낙타봉 구간)과 좋은 날씨에 새롭게 보일 곳(꼬막재 - 장불재 구간)으로 구성했고 날씨가 예보대로 더할 나위없이 좋아 흠뻑 즐겼습니다. 이틀 사이 날씨가 너무 달라 이 후기 일부 사진에도 그 차이가 보일 겁니다.

 

무등산은 국립공원이라 이정표도 많고 또 잘 돼 있어 일단 코스 선택을 하고 길을 나서면 엉뚱한 곳으로 갈 염려가 없어 보입니다. 광주 시내에서 너무 가깝고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어서 들머리 날머리도 분명하구요. 따라서 이 후기는 이정표는 생략하고 무등산 트렉의 인상적인 장면들만 모아서 써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트렉 내내 눈길을 잡은 건 무등산이 화산 지형이라는 걸 보여주는 흔적들입니다.  정상 주변의 서석대와 입석대와 같이 천연기념물로 보호중인 대형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주변 낮은 봉우리와 산 중턱 사면에도 주상절리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것보다 덜 눈에 띄지만 걷다 보면 보이는 암석의 생김새와 그 주변 흙의 거무튀튀한 색깔이 제주도에서 보이는 화산석 느낌이 많이 납니다. 무등산의 이런 모습이 7,8천만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생긴 지형이라는게 해외 학술지에도 게재된 전남대 연구진의 연구로 밝혀졌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분화구같은 분명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튼 무등산이 화산활동으로 생긴 산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결코 짧지 않은 코스길이임에도 많이 힘들지 않다는 것. 사진에서 확인되듯 무등산 전체가 전반적으로 선이 둥글둥글하고 크고, 트레일도 많은 구간이 들레길처럼 만들어져 있는 탓인 듯 합니다. 다른 산에서 같은 길이를 걸었으면 이틀간의 산행으로 녹초가  됐을텐데 별로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찾아가기 쉽고, 오르기 쉽고, 내려오기도 지루하지 않은 그런 산입니다.

낙타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 본 무등산


세번째, 둘째날 아침 일찍 꼬막재 쪽으로 오르면서 아침햇살에 빛이 나던 늦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은 길들과 장불재에서 낙타봉 구간에서 걸었던 아름다운 억새밭길이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꼬막재를 거쳐 장불재로 가는 길은 해발 700~900미터 높이에 걸쳐 있는데 길 전체가 능선길처럼 탁 트인 조망을 주지는 않지만 이른 아침 운무가 낀 담양군의 산군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득함을 맛 보게 해 줍니다. 편도 7km의 길을 걷다 보면 자주 작고 아름다운 길을 마주치게 됩니다.

 

아침나절 꼬막재를 넘어 장불재로 가는 길

장불재에서 무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아닌, 화순 방향으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서면 아래와 같이 완만한 능선 위에 다소 툭 튀어 나온 봉우리까지 이어지는 정말 걷고 싶고, 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길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날은 이 길을 멀리서만 보고 '야, 저 능선 한번 걷고 싶다' 했는데 둘째날 멋진 날씨 속에 걷고 머물고 하면서 길 자체도 즐겼지만 이 능선에서 보이는 무등산도 좋은 날씨 속에 눈에 시리도록 담았습니다.

 


네번째로는 거의 해발 900미터 높이에 자리해 있는 암자인 규봉암의 정갈하고 견고한 모습. 산속에 묻혀 있음에도 앞으로는 탁 트인 전망을 두고 있는 것이 운길산의 수종사를 떠올리게 하고 우뚝 솟은 주상절리를 뒤로 두고 있어 절과 터 전체가 하나로 단단해 보입니다.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하는 의상대사가 참으로 멋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참 멋진 곳에 자리 잡은 아담한 암자입니다

 

규봉암의 여러 모습들

 

끝으로는, 댓재와 토끼등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 늘어선 커다란 단풍나무들. 이 날은 종일 흐렸지만 낮은 지대는 산 중턱이나 정상 부위에 비해 이른 아침에는 다소 햇살이 비치는 날씨여서 한껏 단풍이 든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이 아스팔트입니다. 실제 1980년대 초반에 무등산 순환도로를 착공했던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광주 시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돼 그 흔적만 남은 거라는 군요. 하마터면 무등산 산행을 하루종일 자동차 소리와 함께 할 뻔 했습니다. 

 

 

무등산은 광주 송정역까지 KTX나 SRT, 다음 무등산 입구까지 전철과 버스(1187번, 1187-1)로 혹은 3만원이 안되는 택시요금으로 갈 수 있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아주 좋은 국립공원입니다. 게다가 앞서 얘기했지만 오르는 길이 굴곡이 별로 없고 완만한 편이어서 다른 산에 비해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고, 높이(1,187미터)가 주는 조망 또한 시원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22개 국립공원중 한해 탐방객 수로 한려해상, 북한산, 설악산 다음으로 많은 곳이랍니다.

 

처음 온 무등산. 날씨 덕분에 이틀 연속 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오면 담양군이나 화순군쪽에서 오르는 길을 택해 올라 보렵니다. 또 하나의 장불재~낙타봉 같은 길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8번째 방하도전트렉입니다. 목적지는 포천 명성산. 포천하면 생각나는 산정호수를 품고 있는 산입니다.

 

트렉일자: 2021년 10월 23일(토)

트렉코스: 포천갤러리(산정호수 하동주차장) ~ 명성산 억새밭 ~ 팔각정 ~ 삼각봉 ~ 명성산 ~ 궁예봉 ~ 신안고개 ~ 원점. 약 15km

날씨: 기온은 아침 5도에서 15도로 더할나위 없는 맑은 날씨

 

몇 번 가본 곳이고 집(분당)에서 구리~포천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만에 가는 곳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7시에 출발합니다. 이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엔 포천은 도로 사정때문에 보통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먼 곳이었는데, 덕분에 최근 몇 년 새 포천의 여러 산을 가 봤습니다. 같은 등산도 가끔은 거친 야생의 맛을 기대할 때 포천으로! 포천에는 그 분위기에 딱 맞는 산들이 즐비합니다. 등산객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에서 지자체가 이 점을 잘 이용하면 더 많은 산꾼들이 포천을 찾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가는 명성산은 그래도 사람들 발길이 잦은 곳이라 나름 정비돼 있는 곳이긴 한데 그래도 이런 포천 산의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때가 때인지라 이맘때 명성산의 억새밭 구경은 덤입니다. 다만, 도착하면서 바로 알게 됐지만 정말 억새밭을 찾는 사람들로 등산로 입구부터 억새밭까지의 길은 사람들로 그득합니다. 이 인파를 피하려면 훨씬 일찍 와야 하야 하는 것이죠.

 

이번 트렉을 하면서 새롭게 안 사실입니다. 산정호수 주차장에는 상동과 하동 주차장 2곳이 있고, 이 중 명성산 등산로 입구는 상동주자창에 면해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늘 상동주차장이 같은 시간대면 먼저 차고 많이 붐빕니다. 이 주차장 사진은 하동주차장인데 같은 시간(오전 8시 30분) 상동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집에서 출발이 좀 늦어 주차가 걱정된다거나 하산후 좀 더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하동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동주차장에서 수변길따라 1km 정도 걸으면 등산로 입구입니다.

 

 

산정호수변에서 멀리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명성산. 오늘 거기까지는 가야 합니다.

 

포천의 관광자원 중에서 아마도 제일 많은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열쇠말은 산정호수, 그 다음은 명성산, 아니 명성산 억새밭일 겁니다. 이 날도 이 글의 모든 사진이 증명하듯 날씨는 더할 나위 없는 대박. 게다가 날은 일주일중 나들이하는 사람들로 제일 붐비는 토요일이라 오전에는 산정호수 상동 주차장 입구는 억새밭 구경을 가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오후엔 편안한 햇살 속에 산정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런데 가 본 사람만이 안다고 억새밭을 지나 명성산으로 가는 길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또 명성산에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궁예봉까지 가면 명성산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날 저의 눈대중으로 보면, 이 곳 포천의 산정호수를 찾는 사람이 10명이라면 그 중 3명 정도가 명성산 억새밭까지 오르고, 다시 3명중의 5%가 안되는 사람들이 명성산까지 올라가고, 명성산까지 오른 사람들중 1%도 안되는 사람들이 궁예봉까지 발걸음을 합니다. 아래 사진도 그런 순서입니다.

 

이 아침,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속일까요? 살짝 과장이지만 그만큼 이날 날씨가 대박입니다. 오른쪽은 오후 햇살속의 산정호수

 

억새와 가을은 너무 잘 어울립니다

 

억새밭을 지나 능선위를 올라오면 보이는 산정호수의 다른 모습

 

저 앞 명성산과 궁예봉이 조망되는 이 길은 저한테는 능선위의 명품 길입니다

 

명성산에서 내려다본 궁예봉(사진의 맨 앞쪽에 있는 봉우리)

오늘 등산로 입구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머물던 곳. 억새밭 풍경을 몇 컷 더 담아 봅니다. 억새를 볼 때마다 갈대하고 참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이 글을 읽어 보세요. 잘 정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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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을 지나고 나면 능선으로 올라서는 가파른 길이 이어집니다.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양쪽 모두 탁 트인 조망과 발 아래 멀리 산정호수를 아득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능선길은 날씨가 좋을 때 걸으면 뭔가 먼 길을 막 떠날 때의 느낌이나 이미 먼 길을 걸어오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을 때의 감정들이 느껴지는 묘한 길입니다. 사방이 탁 트이고 멀리 물이 보이고 평탄한 능선길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탓일 듯 합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멀지 않은, 해태상을 이고 있는 삼각봉 표지석을 지나면 바로 철원땅입니다. 표지판에 궁예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태봉국이 언급돼 있습니다. 궁예나 태봉국이나 패자의 역사라 전해지는 사실이 별로 없어 주로 추정이나 전설로 이들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을 뿐이고, 도성터등 관련 유적도 주로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문헌과 사료의 부족과 유적 접근이 어려워 관련 연구도 활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지자체에서 이것을 관광자원으로 키워 나가려는 의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내년에 궁예 태봉국 테마파크가 완공된다는 소식입니다.  

 

 

아래, 명성산 정상을 얼마 안 남겨두고 지나온 길과 명성산 궁예봉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산 자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데 멀리까지 보이는 너른 평원 덕에 아득해 보입니다.

 

 

명성산 정상 표지석과 궁예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 본 명성산. 앞서 얘기했듯이 대부분 이 곳에서 다시 걸어온 길로 되돌아 가거나 신안계곡 쪽으로 하산합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궁예봉으로 가는 길로 조금만 내려오면 아래와 같이 신안고개 쪽 갈림길이 나옵니다. 지형과 날씨가 어울러져 저한테는 이 날 최고의 경치였습니다. 허기도 달래고 경치도 감상하고 경행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궁예봉을 가는 길은 좀 조심해야 합니다. 길은 분명히 나 있는데, 길지 않은 구간에 가파른 지형을 여럿 만납니다. 그러나 봉우리로 향하면서 맞닥뜨리는 경치나 봉우리 위의 조망과 느낌은 위의 갈림길과 함께 오늘 코스 중에서 최고입니다. 젖은 날씨나 어름이 어는 시기에는 위험한 코스이니 갈 수 있을 때 가볼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지자체에서 세워 놓은 듯한 궁예봉 표지목보다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훨씬 번듯합니다. 궁예의 생애나 태봉국의 역사 모두 애틋한 면이 있는데, 초라한 표지목을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궁예의 한자를 보면 활궁 자에 후손예 자를 써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자 모양  자체도 초라한 표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멋지고 존재감이 있어 보입니다. 테마파크 예산으로 이것도 손 봤으면 좋겠습니다.

 

궁예봉에서 하산은 약물계곡쪽으로 진행하는 길과 신안고개 갈림길로 되돌아가는 길이 있는데, 여전히 멀기는 하지만 산정호수 주차장 방향은 신안고개라 그 쪽으로 하산합니다. 약물계곡 길은 다음에.

 

명성산은 바위가 많고 물이 많은 곳은 아니나 그래도 이 길로 내려오면 물소리와 함께 내려올 수 있습니다. 아래 왼쪽에서 보듯 하산 길 중간에 거대한 바위 사면도 만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압도적입니다. 

 

오늘 코스도 나름 종주라 하산 후에도 출발점까지 돌아오는 길은 약 5km의 시멘트, 아스팔트 길로 좀 지루합니다. 그나마 마지막 1km 구간이 산정호수 주변 산책길이라 하산의 피곤함과 지루함을 잊게 해 줍니다.

 

 

내려와서 산정호수를 앞에 두고 멀리 명성산과 궁예봉을 바라봅니다. 명성산은 아래에서 올려 봐도, 능선에서 같은 눈높이에서도, 산아래 산위에서 보이는 호수와 함께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1차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방하 도전트렉중에서 제일 길고 힘들었던 트렉입니다. 등산앱에 따라 길이가 좀 달라질 수 있지만 대체로 25~26km 정도 되는 기~인 코스입니다. 특벽히 힘들다고 한 것은 체력이 고갈될 쯤 막판 가야산까지 점점 높아지는 봉우리와 깊은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정말 마의 구간을 지나야 가야산 정상에 이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코스를 우리나라 4대 종주코스중 하나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검색해도 산행기가 별로 없고 이날 저희 기나긴 트렉중 가야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만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발길이 잦은 코스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거기에는 교통편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열차 등으로 편하게 닿는 경북 김천역에서 코스의 시작점인 수도암까지 차로 1시간 거리이고, 종주가 끝나는 경북 성주에서 다시 김천으로 되돌아 오려면 차로 1시간 거리입니다. 대중교통? 택시 말고는... 12시간 가량 걸리는 산행 시간과 10월의 일몰 시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수도암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분당에서 김천까지 차로 2시간 반 가량 걸리니 당일치기 산행시 늦어도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하죠.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날 자차로 저녁에 출발, 다음날 새벽에 시작하는 여정으로 잡았습니다.

 

트렉일자: 2021년 10월 16일(토)

트렉코스: 경북 김천 수도암 주차장 ~ 수도산 ~ 단지봉 ~ 두리봉 ~ 가야산 ~ 백운동탐방소. 아래 지도 참조

트렉시간: 새벽 5시 ~ 오후 5시

날씨: 15일 늦은 저녁부터 16일 늦은 오전까지 비(예보대로 비가 제법 오는 날씨. 산행중엔 주로 부슬비). 기온도 1천미터 ~ 1천3백미터 능선코스 내내 체감온도 3~5도 전후, 바람은 5~6m/s으로 예보됐으나 체감온도를 2~3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기 

 

날씨만 보면 일반적인 산행도, 특히 이런 코스는 안 가죠. 그런데 방하 도전트렉이라 하는 수 없이. ㅎㅎ 아래 지도를 보면 전체적인 코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위도는 살짝 낮아지는 코스입니다. 오른쪽 대동여지도(출처: 최선웅/민병준 공저 해설 대동여지도)를 보면 지도 내 선이 더 단순해서 방향이 더 분명해 보입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능선의 규모의 차이를 굵기를 달리하여 표시한다는데, 백두대간이 제일 굵고 정맥 지맥순으로 얇아진다고 하네요. 이 능선이 대간길은 아니지만 굵기로 보아 이 코스는 정맥의 규모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대동여지도에 산이나 봉우리는 톱니바퀴처럼 뽀족하게 표시되는데, 전체 코스중 가야산으로 가까이 갈수록 봉우리가 많아 보입니다. 실제로 이 코스는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는데 더 힘들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코스는 아니지만 일부 구간을 제하곤 능선 전반적으로 길이 닦여서 잘 보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만큼 산꾼들이 찾는 코스란 애기죠. 그래도 이번에 길을 찾아 두번 헤맸습니다. 한 번은 수도산 정상에서 단지봉 가는 길을 못찾아 20분, 다른 한 번은 단지봉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길이 흐릿해져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다고 되돌아 오느라 40분을 헤맸죠. 첫번째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는 것을 두번째에서는 종주같은 긴 산행을 할 때는 기본적인 방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어떤 여정이든 들머리를 찾아야 시작할 수 있는데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중 가운데는 수도암 주차장에서 보이는 수도암 출입문입니다. 돌계단을 좀 올라야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 출입문을 지나고 바로 오른쪽으로 보면 조그만 돌다리가 보입니다(어느 분 블로그에서(출처는 사진 설명에)). 이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서 약 2~30m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수도산 입구 표지판(제일 오른쪽 사진)이 보입니다. 어두워 이 표지판을 지나치면 다시 조그만 돌다리를 건너게 되니 수도산 입구 표지판은 두 돌다리 사이가 되네요.

낮에 보이는 수도암 경내(출처: https://m.blog.naver.com/9594jh/221116636303)와 새벽의 수도암 출입문

수도산 정상까지 2km, 1시간 정도 거리입니다. 어두워도 돌계단, 나무계단이 대부분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1시간만에 수도산 정상에 다다르긴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정상을 70m 앞두고 보이는 이정표의 '단지봉'을 못보고 수도산만 보고 갔다는 것. 그러는 바람에 수도산을 넘어 거창군쪽으로 넘어서 가랫재, 양각산 방향으로 가다가 되돌아 오고 정상 주변에서 잠시 멘붕을 겪었죠. 다행히 이전 산행기 블로그 내용이 기억나 '수도산 삼거리'라는 표현이 생각이 났습니다. 오를때 어둡고 비도 오고 먼 길을 앞두고 마음은 좀 급하니 위 맨 왼쪽 사진의 이정표에서 수도산만이 보였던 겁니다. 이 코스 종주를 계획하시는 분들은 꼭 기억하시길. 수도산 정상을 찍고 다시 수도암 방향으로 70m 내려와야 단지봉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어느덧 저 멀리 수도산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합니다. 길도 밝아졌구요.

 

코스에 이정표가 많지 않고 귀해 이번엔 모든 이정표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제가 두번째로 헤매다가 정말 제일 반갑게 만난 이정표는 따로 뺍니다. 수도산과 단지봉 중간쯤에 갑자기 길도 흐릿해지고 믿었던 리본도 안 보이고 하면서 하마터면 가야산 방향인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갈 뻔 했습니다. 긴 코스이니 가끔 리본이 안 달린 곳도 있으려니 하고 감으로 길을 찾는데 하필이면 잘 못 잡은 곳이 쭉 길이 나 있더군요. 길처럼 보인 것을 탓할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지도를 충분히 숙지했더라면 그렇게 잘못된 길로 길게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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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모음이니 경치는 없습니다. 종주룰 계획하시는 분들만 보세요.

 

여기서 저를 구해 준 건 '산넘어산'이라는 등산앱의 경로추적 기능입니다. 등산앱은 쓰는 사람마다 좀 달라서 사용 방법은 조금씩 다를 겁니다. 한 마디로 제가 가는 길을 GPS로 쭉 기록하면서 경로를 표시해 주는 기능입니다. 사실 길을 잘 모르는 산에서 헤매기 시작하면 방향도 중요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어디로 걸어 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잘 못 잡았을때 원래 위치로 되돌아 갈 수 있죠. 근데, 이것이 큰 산에서는 주변이 다 비슷비슷해 금방 오던 길도 거슬러 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헤맬 때는요. 근데 GPS의 이 기능만 있으면 적어도 잘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두번째로 저를 구해준 건 리본입니다. 코스를 완주해 보니 이 코스에는 가야산을 앞둔 마지막 구간 일부를 빼곤 거의 모든 구간에 먼저 완주하신 분들이 달아 놓은 리본이 수시로 보입니다. 대략 100~150m마다 리본이 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이 좀 헷갈린다 싶으면 여지 없이 리본이 길잡이가 돼 주었습니다. 이 코스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국립공원 내의 종주코스가 아니어서 위 사진의 이정표 말고는 행정 기관에서 별도로 정비 관리하는 흔적이 안보입니다. 다른 코스에 비해 리본의 역할이 정말 절대적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이정표를 만나는 건 산행에서나 인생에서나 중요한 문제이면서 다소 행운도 따라야 합니다.

 

 

무사히 단지봉에 도착했습니다. 단지봉 정상은 족구장 2개는 족히 만들 만한 평평한 지형입니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흐린 날엔 멀리 있는 마루금보다는 구름의 조화가 더 멋지게 보입니다. 단지봉 정상석 뒤 멀리 가야산 정상이 보입니다.

 

아직도 가야산까지 가려면 첩첩산중이네요. 

 

하지만 이제 걸어온 길도 꽤 됩니다. 왼쪽에 단지봉 오른쪽 끝이 수도산.

 

철이 바뀌면서 숲의 모습도 변해 갑니다. 왼쪽의 생강나무는 이제 노란 단풍이 된 후 잎이 떨어질 것이고, 오른쪽 철쭉은 오래 전에 잎이 떨어져 가지만 남았으나 겨울에 빼곡한 가지 위에 서리와 눈이 내리면 다시 꽃을 피울 겁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아래 잣나무 숲과 전나무 숲은 존재감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자작나무(위 사진 제일 왼쪽)는 사실 뽀얀 빛깔과 특이한 나무껍질로 인해 언제 봐도 눈길을 끄는데 겨울에도 침엽수에 그 존재감이 뒤지질 않습니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단지봉 가기전 이정표가 가리키는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군락을 만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사실 존재감으로 따지자면 이번 종주 코스에서는 단연코 조릿대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산행과 트렉중에서 조릿대 밭을 가장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사실 만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헤치고 가야 할 정도로 사람 키 높이 조릿대밭, 키를 넘는 조릿대밭을 수시로 관통해야 했습니다. 특히 단지봉을 지나서 가야산을 오를 때까지 조릿대밭이나 군락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조릿대 군락은 밀도가 너무 높아 마른 날씨에도 힘든데 젖은 날씨라 더 힘들더군요. 너무 빼곡해 조심하는데도 두어 번 넘어지기도 했고 한 번 빠져 나오면 말랐던 옷이 다시 젖곤 했습니다.

 

키높이 조릿대밭 헤쳐 가는 중

조릿대밭을 이렇게 헤치고 나오면 아래 위 옷이 모두 이렇게 젖습니다. 

 

 

여기서 저의 최애 등산장비를 소개해야겠습니다. 입는 것이라 옷이긴 한테 장비에 분류하는 것이 낳을 것 같아요. 덧바지라고 하는데, 등산바지 위에 필요에 따라 신발을 벗지 않은 상테에서 착용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서 방수, 방풍, 보온 효과까지 전천후입니다. 방수 방풍은 소재 덕에 보온은 한 겹을 더 입으니 공기층 덕에 생기는 효과입니다. 산행 중에 날씨가 궂을 가능성이 있거나 추운 날엔 늘 제 배낭안에 필템으로 들어갑니다. 이번 트렉에도 위와 같이 수시로 젖은 조릿대밭을 통과할 때나 아래와 같이 바람이 많은 길에서 이 장비 덕택에 몸을 마르게 유지하고 체온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아래는 저의 덧바지 사진입니다. 브랜드는 알아서 선택하실테고, 사실 때 소재 꼭 확인하시고 탈착이 편하고 내구성이 좋은지 살펴보고 사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제 것은 다리 양 옆이 발 부분에서 허리까지 지퍼로 완전히 트이고 닫힙니다. 그러니 입고 벗을때 등산화를 벗을 필요가 없습니다. 장갑과 등산화도 이런 확실한 게 있었으면 하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드뎌 가야산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앞서 코스 소개할 때 두리봉 지나서부터 가야산까지의 구간을 이 긴 코스의 마의 구간이라고 했는데 오른쪽 고도 그래프를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아래 지점까지 오면서 이미 굴곡이 심한 고개와 봉을 넘고 거리 20km를 넘긴 상태인데 봉(가야산)이 하나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정말 넘사벽처럼 보이고 무겁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가야산을 올랐습니다.  

 

 

가야산 상왕봉입니다. 

 

기쁨에 차 몇 장 조망도 담아보고.

 

그런데 너무 춥습니다. 1,500m가 넘으니 기온도 더 떨어지고 바람은 더 셉니다. 오늘 코스에서 처음으로 사람 구경을 했는데 그 마저도 몇 안 됩니다. 거리는 2백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행정구역 상으로는 상주군에 속해 있는 칠볼봉을 찍고 얼른 하산을 시작합니다.

 

 

 

새벽부터 종일 무거운 하늘을 이고 습한 공기와 바람을 헤치고 먼 길을 오느라 지치고 힘겹지만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게 돼서 다행입니다. 다음 번 이 코스를 다시 타게 되면 이 분들처럼 깔끔한 날씨 속에 걷고 싶습니다. 높은 산 종주의 놓칠 수 없는 맛 중의 하나는 주변 산군들의 끊임없는 조망을 즐기는 건데, 이 분들은 날씨 덕에 원없이 즐긴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맑은 하늘 속에 백두대간의 전망대라고 하는 수도산에서 대간 마루금을 맘껏 눈에 담을 겁니다.

 

하산하면서 코스를 복기해 보니 목통령 쯤에 산장 같은 숙소가 하나 있어 하루 1박을 하고 다음날 가야산까지 종주를 이어가면 더 즐거운 트렉이자 산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도 해결돼야 하고 지자체의 기획도 필요하겠지만. 날씨가 궂은데도 수도암에서 목통령까지 길은 정말 긴 생각을 부여잡고 혼자 마냥 걷고 싶을 때 어울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좀 길면서도 지형이 험하지도 않고 정말 혼자이고 싶을 때 걷는, 그런 길입니다. 산티아고는 안 걸어 봤지만 왠지 '산위의 하루짜리 산티아고'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작년에 장수대에서 한계령으로 타면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보고 이번에 같은 봉우리를 타는 게 두번째입니다. 그 때는 마치 와호장룡의 한 장면처럼 산행 내내 능선 양편이 완벽하게 안개로 가려지는 바람에 이 능선 산행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보다 귀때기청봉 주변의 너덜바위 지대가 주는 황량함이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교리에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한계령으로 이동하면서 기사분과 날씨를 얘기해 보니 이번에도 또 그럴까 하는 불안감이 스며듭니다. 적어도 날씨예보와 속초, 양양군, 인제군에 1주일째 비가 계속 부슬부슬 오고 있다는 기사분 얘기로 이건 기대를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결론은, 이런 날씨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를 그것도 과해서 식상하지 않도록 볼 수 있었던 드문 산행이자 트렉이었습니다. 아래 이번 트렉의 기본 정보입니다.

 

트렉 코스: 한계령 ~ 귀때기청봉 ~ 1408봉 ~ 대승령 ~ 남교리탐방지원센터. 산행앱에 따라 19km ~ 20km

트렉 시간: 오전 5시 40분 ~ 오후 3시

교통편: 분당에서 자차로 새벽 3시 출발, 남교리탐방지원센터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계령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성수기에는 한계령휴게소(사유시설)가 주차장을 폐쇄)

날씨: 새벽부터 오전 내내 가벼운 비가 예보됨. 정상부 기온은 10~11도. 설악산 주변 지역 예보나 대청봉 주변 예보나 같음

 

그 동안 설악산 산행으로 한계령을 찾었던 때가 비수기였다는 것을 이번 트렉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막연히 단풍철이니 한계령 휴게소가 좀 붐빌거라고 예상해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휴게소에 전화하고, 양양군청이나 인제군청에도 전화해 봤습니다. 전화하면서 알게 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한번 더 확인한 사실은 단풍철 같은 성수기엔 한계령휴게소 주차장이 폐쇄된다는 사실. 아니 정확히는 산행객들이 찾는 새벽시간에는 주차할 수 없다는 것을요. 한계령휴게소가 사유시설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고, 그러다보니 관광객들이 주로 오는 시간대에 주차공간이 없다는 건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곤란한 일이죠. 이건 이해되는데, 그 이른 새벽에 경찰차가 나와서 사유시설에 주차 못한다는 안내지도를 귀에 따갑게 하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택시에서 내리면서 상황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트렉의 종착지에 차를 두고 왔으니 급할 것도 없고 이제 편하게 오늘 계획했던 트렉을 즐기면 되겠습니다. 다만, 날씨의 변화를 바랄뿐.

 

한계령삼거리로 가는 새벽 길

 

능선의 시작점인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땀이 좀 나는 경사가 급한 길인데, 한계령이 이미 1,000m에 가까운 고도이고 한계령삼거리가 1,350m 정도이니 고도로는 350m 정도를 오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합니다. 다행히 출발하면서부터 예보와는 달리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사실 예보는 설악산을 끼고 있는 속초, 양양, 인제 날씨이거나 설악산 정상부 날씨이지 그 사이 고도 예보는 아니니 기상청을 나무랄 이유는 없습니다.

 

어느덧 땀 좀 빼니 한계령삼거리에 다다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청봉, 왼쪽으로 가면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오늘의 트렉코스입니다. 압도적으로 대청봉쪽으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트기전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때엔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한계령 삼거리 이정표와 오늘의 트렉코스 고도정보(출처: https://gemseed.tistory.com/403)

 

 

귀때기청봉하면 정상 주변의 너른 너덜바위 지대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커다란 바위편들이 제멋대로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구조로 멀리서 보면 표면이 삐뚤빼뚤한 거대한 바위밭입니다. 

 

귀때기청봉 주변의 너덜바위밭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내설악 봉우리들

서로 모양이 다른 바위편들이 서 있거나 누워 있는 각도가 다르고 바위편들 사이에 발이나 다리가 빠질 수 있는 빈 틈이 많아 너덜바위지대에서는 정말 조심하면서 오르고 내려가야 합니다. 특히 오늘 같이 땅이 젖어 있는 날에는. 내리막길에서는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젖은 바위가 참 위험하다는 것, 오늘 귀때기청봉을 넘어 너덜바위지대 하산길에서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너덜지대로 진입하면서 고개를 드니 오늘 희망이 보입니다. 이른 아침인데 예의 하늘 빛이 비치고 멀리 귀때기청봉 정상도 보입니다. 운 좋으면 멋진 경치를 맞이할 거라는 기대도 해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귀때기청봉 정상으로 오르는 너덜바위길에서 잠깐잠깐식 하늘이 열립니다. 운해가 깔리고 햋빛이 먹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모습이 종교적인 엄숙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날씨때문에 내설악쪽 능선이 전혀 보이질 않는데 이렇게 남설악쪽이 살짤살짝 열리면서 이런 날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을 선사합니다. 정상을 넘어 반대쪽에서는 오늘 본 풍광 중에서 최고를 맛 보게 됩니다.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 너덜바위 길에서 아직 탐스럽게 달려 있는 마가목 열매와 분비나무를 만납니다. 분비나무는 구상나무처럼 생겼는데 좀 찾아보니 귀때기청봉 주위에서 발견되는 침엽수는 분비나무네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침엽수 구별법은 이 링크에서.  안타깝게도 이렇게 푸른 분비나무를 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온난화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설악산 전체에서 분비나무 군락이 서서히 고사하고 있답니다.

 

귀때기청봉 정상을 지나 반대편 너덜바위지대로 내려오다가 만난 풍광들입니다. 사진속에 보이는 봉우리는 1408봉. 바람 많기로 유명한 귀때기청봉 정상 아니었으면 아마도 못 봤을 경치입니다. 사진에서도 보듯 수시로 운무가 바람에 실려 오고 가면서 그때마다 순간순간 이런 경치를 보여 주곤 했습니다.  안 그래도 허기를 느끼던 때라 잠시 쉬어가면서 오늘 트렉중에 제일 오랫동안 머물던 곳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그야말로 경치에 취해 있었습니다. 

 

 꼭 유화로 풍경화를 그리는 것 같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 사진을 찍기 전 주변이 온통 거친 바위인 곳에서 앉을 만한 곳을 찾다가 젖은 바위에 미끄러지면서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경험상 젖은 바위나 나무 위를 걸어갈 때가 산행중에 제일 위험한 때인 것 같습니다. 겨울철엔 체인이나 아이젠이 받쳐주는데 다른 계절엔 그러지도 못하고.

 

귀때기청봉을 지나 1408봉으로 향하면서 들어온 경치입니다. 왼쪽에 남설악은 가끔 이렇게 시야에 들어오는데 오른쪽 내설악쪽은 여전히 안개로 가득합니다. 다음에 이 코스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 ㅎㅎ

 

 

이 높이(1,300 ~ 1,500m)에서는 벌써 단풍이 자취만 있습니다. 아래 단풍 모습이 그나마 유일하게 온전했던 것으로 사진에 남깁니다. 단풍잎이 떨어진 모습도 땅이 젖어버려 그 고운 색깔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산로를 벗어나 발이 닿기 어려운 곳에 너무도 고운 빛깔로 빛이 바랜 나뭇잎이 달려 있어 찍었습니다. 마치 봄에 막 자란 새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408봉을 넘어서면 대승령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자 설악산의 여느 능선길과 달리 높은 곳에 위치한 편안한 산길입니다. 이는 말보다 사진이 더 분명하게 전달할 것 같습니다.

 

점심 때가 돼 드디어 하산길의 시작인 대승령에 도착합니다. 대승령 이정표 보다는 조선시대 조인영이라는 사람이 이곳을 다녀가고 남긴 시에 더 눈길이 갑니다. 싯구절중 '좋은 경치 눈앞에 막 펼쳐지니 험준한 곳임을 어찌 헤아리랴'에 공감 팍! 오늘 내설악쪽 경치까지 열렸으면 대박 공감이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대승령을 지나면 하산이 시작되는데 처음 약 2~30분 동안은 얌전하게 생긴 안산이라는 봉우리를 타고 넘어가는 오르막(고도 약 150m, 길이 약 1km)을 올라야 합니다. 1408봉을 지나 쭉 내리막 하산을 하였으니 당연히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기대했는데, 한마디로 '읔'입니다. 조금 과장을 하면 오늘 트렉의 최초 오르막길인 한계령~한계령삼거리 만큼 땀이 납니다.

 

안산만 넘으가면 그 뒤로는 쭉 내리막길입니다. 안산이 고도가 1,250m쯤 되고 남교리탐방지원센터가 약 300m이니 고도차는 1km이지만 길이는 무려 8km가 넘어 정말 길고 완만하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하산하게 됩니다. 바닥도 표면이 고른 돌길로 만들어 놓아 젖은 날씨만 아니면 뛰어 내려가도 될 정도입니다. 사진속 길이 약간 습한 날씨 속의 한라산 느낌도 줍니다. 

 

 

이 하산길도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인데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아래 영상에서도 보이듯 아래쪽 큰 계곡물로 모아지기 전의 시냇물과 한 동안 같이하며 걸을 수 있습니다. 작은 물길이라 거의 바로 옆에 두고 걷는 느낌이라 조용한 산길을 물소리와 함께 걷는 기분입니다.

 

 

하산이 가까워질수록 물은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세차집니다. 

 

단풍이 7~800m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빨간 단풍, 노란 단풍, 누런 단풍... 빨간 단풍잎의 단풍나무 말고도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아까시나무, 생강나무 등도 단풍잎을 만들어 냅니다. 빛깔이 다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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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교리 하산길은 몇 주전 걸었던 천불동 계곡과는 사뭇 다른 계곡길입니다. 천불동 계곡은 규모도 거대하고 걷다가 위를 둘러보면 설악산의 암봉들이 솟아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그에 비해 남교리 하산길의 계곡은 솟구친 암봉들의 모습은 없어도 길따라 작은 물이 큰 물로 모아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걷는 길의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줘 큰 계곡임에도 작은 산의 계곡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긴~ 하산을 마치고 다시 설악산공원 조감도를 마주합니다. 방하트렉으로 갔다오는 설악산도 오늘까지 벌써 세번째입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그리고 동료들과 여러차례 즐겨 찾았지만 지도를 보니 이 너른 곳, 아직도 찾을 곳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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