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이면 가고 싶은 산이 있습니다. 덕유산이 그런 곳이지요.

 

설악산과 덕유산에 거의 같은 날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있었지만 산정상 주변 낮기온이 5도 안팎이고 이미 눈이 내린지도 며칠이 지난지라 눈산행은 기대도 안했는데. 올 첫 눈꽃 산행을 늦가을에, 그것도 눈이 오면 더 아름다워지는 덕유산에서 하고 왔습니다.

 

  • 트렉일자: 2021년 11월 13일(토)
  • 트렉코스: 경남 함양군 영각사 => 남덕유산 정상 => 삿갓봉 => 무룡산 => 동엽령 => 안성탐방지원센터. 전체 약 18km
  • 교통편: 자차. 영각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서상버스터미널(함양군 서상면)까지 남부터미날발 버스가 있긴 하나 하루 2번 있는 서울행 막차가 오후 3시 50분이라 시간이 촉박(버스 시간표는 여기에)
  • 날씨: 오전은 구름낀 날씨, 오후는 대체로 맑은 날씨. 기온은 오전 7시30분경 남덕유산 정상 주위의 체감온도 2~3도, 낮에 능선에선 7~8도

 

아래 구글 어스(Earth) 이미지에서 보이듯 급한 오르막길은 해발 약 700m에 위치한 영각사에서 1,500m가 조금 넘는 남덕유산 정상까지지만 시작점에서 약 10km 지점인 무룡산의 고도가 1,490m라, 전체 지형은 대략 남덕유산 정상을 지나고 길게 내리막이다가 다시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무룡산을 지나면 이 트렉의 힘든 구간은 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동엽령까지의 능선 길이는 대략 10km. 아래 고도그래프에서 그 지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성면으로 내려가지 않고 몇 키로 더 직진하면 완전한 덕유산 종주가 됩니다.

 

구글 어스(Earth)에서 본 오늘의 트렉코스

 

산행시간 대략 9시간 예상되는 코스라 전날 서상면버스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6시에 트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채비하고 예정대로 6시에 트렉을 시작합니다. 

 

11월 중순의 일출 시간은 대략 7시, 영각사에서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30분에서 2시간. 혹 눈이 모두 녹았더라도 서리꽃을 볼 수 있는 적당한 시간대에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출발합니다. 눈이 내린 산길과 나무에 내려 앉은 눈꽃도 좋지만 나무가지에 핀 서리꽃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보통 막 동이 트는 시점부터 이른 아침까지죠. 서리꽃에 대한 기대와 함께 눈까지 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어두운 새벽길을 오릅니다. 영각사 입구 바로 옆 트인 길부터 등산로는 시작되는데 공중화장실이 무려 600m 떨어져 있는 게 의아하실 겁니다. 영각사에도 주차장이 있고 이 지점 주변에도 차를 몇 대 세울 수 있는 공터가 있지만 600m 아래 지점에 대형 주차장이 있고 그곳에 화장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등산객은 영각사 주변에 차를 대지 말라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한번 산행을 하면 10km에서 20km를 걷는 사람들이 차는 가급적 등산로 시작점에 바짝 대려는 심리들이 있죠. 그만큼 걷는 거리를 줄이고 싶은 마음일까요, 아니면 다른 심리일까요?

 

어두운 산길을 오른지 한 1시간 됐을까요? 벌써 동이 터오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엇보다도 오늘 트렉이 어떨 것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이 쯤 되면 완전 겨울 눈꽃 산행입니다. 덕유산같은 큰 산의 첫눈은 역시 도시에서 보는 찔끔 오는 눈이 아닙니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나 남덕유산 정상 부위에 다다릅니다. 날씨는 고맙게 흐린 날씨 속에도 순간순간 아침햇살을 비쳐 주고 그때마다 눈꽃, 서리꽃이 화려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날 정상 주변엔 바람이 좀 센 편이어서 이 바람 덕에 구름이 살짝살짝 걷히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오늘 전체 코스 중에서 요 지점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풍경에 취해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사진도 제일 많이 찍었구요. 가끔 숨이 멎을 듯한 경치를 볼 때가 있는데 이 지점의 이 때가 그랬습니다. 동영상도 하나 넣었습니다. 영상 속 주변 사람들의 감탄사로 이 때 경치가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기를.

 

 

 

 

 

남덕유산 정상석입니다. 흡사 에베레스트 정상 주변으로 보이지 않나요? ㅎㅎ

 

아래 눈덮인 언덕을 넘어 가면 진정 설국으로 들어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남덕유산 정상을 지나서는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려 원경은 볼 수가 없고, 주변이 온통 눈인 눈숲을 걸었습니다.

 

 

12시가 좀 넘어서야 하늘이 좀 열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맑은 날씨 속에 구름이 멋지게 걸쳐 있는 풍경이 펼쳐입니다. 

 

 

저 아래는 아직 늦가을인데... 

 

이 지점이 아마도 무룡산을 지나 얼마 안된 곳일 겁니다. 지나온 곳이 순하게는 안생겼죠? 오늘 코스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구간(남덕유산 정상 ~ 무룡산)을 뒤로 하면서 한 숨을 돌렸습니다.

 

 

그림을 그릴 줄 알면 이런 그림 한 번 그리고 싶습니다. 

 

무룡산을 넘어 하산 기점인 동엽령으로 가는 길에서 잡았습니다. 온화한 날씨에,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서 있는 눈꽃 나무, 저 멀리 산 위에 떠 있는 구름까지, 이 높이에서 이 순간에 걷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풍경입니다.

 

 

대부분의 종주코스가 그렇듯 오늘도 기점과 종점은 행정 구역이 다릅니다. 경남 함양군에서 전북 무주군으로 넘어 왔습니다. 자차로 왔으니, 차를 찾으러 가야 합니다. 이때 이동수단은 거의 항상 택시입니다. 혹여 대중교통이 있어도 종주에 드는 긴 시간때문데 대중교통은 이미 끊어져 버리니까요. 택시비도 제 경험상 거리가 40분에서 1시간이면 대략 5만원 안팎입니다.

 

거리도 꽤 되고, 힘든 구간이 늘 있고, 교통비도 제법 드는 종주를 사람들이 하는 이유는 다른 코스들과 달리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봉우리, 능선, 높이가 주는 조망, 날씨의 변화 등 그 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걸 모두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트렉도 덕유산 종주코스의 100%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종주만이 주는 그런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