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매길은 바다를 뜻아하는 고유어 '아라'와 산을 뜻하는 고유어 '메'를 합한 말이라는데 아마도 제주 올래길의 흥행성공을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밴치마킹해서 만든 여러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오늘 계획된 트렉코스에서 서산아래매길은 보다는 가야산(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이 아닙니다!)의 비중이 더 커서 가야산~일락산 연계산행이 더 맞는 표현이지 싶다. 서산 가야산도 지난번 갔었던 용봉산, 덕숭산과 함께 덕산도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등산로관리가 잘되 있는 편이였다.
센트럴시티(고속터미널)에서 덕산파크행 버스를 타고 08:50에 덕산파크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가야산 주차장으로 이동하려 했다가 어차피 개심사에서 서산으로 나가는 버스가 오후 3시 50분에 있기에 시간이 많이 남을거 같아 그냥 걸어서 가야산 주차장까지 갔다. 거리상으로 5km가 넘는데 1시간 정도 걸어서 가야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야산 주차장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예산터미널에서 09:10분에 출발해서 09:55분에 덕산면을 거쳐 상가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다음버스는 12시에나 있다( *상가리에서 버스이용은 아래 버스시간표를 참고)
가야산 주차장은 꽤 넓은 편이였고 등산객들도 꽤 많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들어가서 그런지 인지도가 꽤 있는 산인가 보다.
가야산 주차장에서 조금 지나치면 남원군묘 이정표가 나온다.
남원군묘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였다. 현재는 가야사지 유적 발굴 조사로 공사 중이였다.
첨탑이 보이는 곳이 가야산 정상인거 같다.
남연군묘를 지나 저수지를 가로지르면 등산로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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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진곳은 눈이 쌓여있고 햇빛이 비춘곳은 흙이 드러나는 길을 1시간 반 가량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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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절에는 보기는 드문 장난을 누군가 해놨다.
가야산 정상도착
가야산 정상부에서 주변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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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인 석문봉은 1.5km 정도 거리, 여기서부터는 그냥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라 왠지 수월할거 같은 느낌이 든다.
가야산 정상부와 이후 능선길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어 조심히 걸어야 했다.
소원을 빌어 보라는데..... 소원 빌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고 딱히 빌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그냥 패스.
석문봉 도착, 그런데 아까 이정표에 몹쓸 장난질 한 인간이 여기도 들려 갔는지 정상석에도 비슷한 장난이 되있었다. 정말 어떤 정신상태의 인간인지 심히 궁금하다.
석문봉에서 인상적인게 어떤 산악회에서 만든 '백두대간 종주 기념탑'이 였다. 보통 산악회에서 정상석을 만들어 놓는 경우는 종종 봤는데 여기처럼 이렇게 큰 탑을 만든 경우는 처음보는거 같다.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대단한 산악회다. 리스펙트!
일락산으로 이동 중 하마트면 헤맬뻔 했던 곳. 길이 평상의 왼쪽으로 이어져 있어 그냥 그대로 따라갔는데 갈수록 이상하게 길이 흐려지더니 길을 잃었다. 지도앱을 봐도 능선길에서 벗어난걸로 나오지는 않는거 같은데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잔목들을 헤치면서 나아가는데 앞에 등산객 한분이 계셨다. 그분이 여기는 길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해서 다시 평상있는데 까지 돌아와서 보니 평상 오른쪽으로 길이 있었다.
일락산에 거의 다 와 갈무렵 -'아라매길'에 부침- 이라는 시문이 적힌 비석이 나온다. 여기서 부터가 아라매길인가 보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진짜 숲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금강송같이 크고 쭉 뻗은 소나무는 아니지만 온통 소나무로 꽉 들어찬 숲이 나오기 시작한다. 눈덮인 가야산을 타고 넘어 소나무가 울창한 일락산으로 접어든 것이다. 흡사 계절이 겨울에서 산림이 푸르른 오뉴월로 변한거 같은 느낌이다. 소나무숲이 주는 청량함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
일락산 정상도착, 정상석 표시는 없고 그냥 이정표와 쉼터가 설치되 있는걸로 보아 여기가 정상인걸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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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심사로 내려간다. 개심사로 가는길 내내 멋진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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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에 도착할 쯤 일락산에선 못본 리본이 보인다.
2시가 조금 넘어서 개심사 경내에 도착했다. 버스시간이 많이 남아 천천히 개심사를 둘러봤다.
'상왕산 개심사' 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일락산이 아니라 상왕산인가 보다.
개심사 경내 모습. 개심사에 대한 내 첫인상은 소박하고 한산한 느낌의 조용한 절이다 인데 왠지 가을에 오면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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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일주문을 나서면서 오늘 트렉을 마친다.
개심사 주차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3시 50분 버스를 타고 서산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귀가로 오늘 일정을 마쳤다.
洗心洞 개심사입구 계단을 오르며, 오늘 이 길을 걸으며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씻겨져야 할 것들까지 깨끗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1.1일 첫 날 찾은 개심사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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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동을 지나며......
개심사 경내로 드는 입구에 왼편으로 등산로 안내가 있다. 내포문화길 안내표지에서 백암사지 방향으로 오르면 한참 후에 일락산으로 향하는 길과 만나게 된다.
아직 며칠 전 내린 눈이 남아 있었지만 누군가 먼저 오른 이의 발자국이 있어 따라 올라갔다. 가다 보니 눈 위에 화살표와 가야산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 길을 먼저 걸어 간 어떤 이도 일락산과 가야산 방향을 찾느라 마음 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나 보다.. 개심사에서 출발하는 내포문화숲길 안내에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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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을 걸어 전망대까지
전망대를 지나 일락산으로 가는 길은 간간이 눈이 남아 있었다. 일락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고 석문봉을 향해 출발했다. 좀 전의 정자보다 시야가 트인 찐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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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산
사잇고개로 내려서고 다시 오르기를 한참 석문봉에 도착했다. 후기를 검색했을 때 석문봉에서 가야산으로 향하는 곳에 암릉구간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암릉일까? 내심 기대했기에 살펴보니, 그리 길지 않았다. 좁은 눈길이지만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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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봉
이제 마지막 가야산 정상을 향해 간다. 기지국이 서 있는 저곳이 길 것 같다. 이제. 대부분의 정상은 저런 모습이다. 스마트한 세상을 누리는 결과려니 생각하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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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이제 하산길이다. 안내도에서 가장 진한 색으로 표시돼 있던 길이 짧은 길이라 가파른 계단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돌계단이 굽이굽이 돌아내려 간다.. 내려설 때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내려가는 이들도 여럿이지만 이 시간에 올라오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경사 계단과 눈
언제나 길은 다다름이 있어 좋다. 급경사 내리막이 끝나도 완만한 도로를 걸어 남연군묘를 지났다. 공사중이었다. 조금 지나자 도로변에 전을 편 어르신이 냉이를 팔고 계셔서 한 봉 샀다.상가리마을회관 앞에서 트렉을 종료했다.
수도지맥(修道支脈)중 수도산에서 가야산(가야산은 수도지맥에 속하지는 않는다)까지의 구간을 걷는 이 코스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산행기가 그리 많지 않고 게다가 최근(5년내)의 산행후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개 되지 않는다. 몇 안되는 산행기를 읽어보면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 곳이라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교통이 편하지 않고 숲이 우거지는 계절에는 산행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길이 잘 닦여진 곳이 아닌데다가 게다가 비법정탐방로까지 지나가야 한다.
일단 교통편부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치가 않았다. 25km 이상 거리의 산행을 하려면 새벽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수도암을 들머리로 하던 백운동탐방센터를 들머리로 하던 대중교통으로는 그 시간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차로 움직이기에는 밤운전과 운전시간이 부담되고 게다가 산행 후 들머리로 돌아가려면 택시로 1시간 이상 가야만 한다(택시비도 만만찮을 거다). 혹시나 안내산악회 버스편이 있을가 찾아봤지만 역시 없다.
처음에는 그냥 김천에 가서 하루 자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수도암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김천역에서 수도암까지 40km가 넘는 거리라 택시로도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좀더 수도암에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한 후 택시를 이용할 방법을 찾아봤다. 김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덕면까지는 밤 9:30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가 있고 대덕면에서 수도암까지는 15km 내외라 대덕면에서 숙박을 하면 새벽에 수도암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30분정도로 짧아서 여러모러 유리할거 같았다. 지도로 봤을 때 면사무소도 있고 소방서, 경찰서, 그리고 초중고등학교도 다 있는걸로 보아 완전 깡촌은 아닌거 같았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짐을 꾸려 김천 대덕면으로 출발했다. 김천역에 도착해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대덕면에 10:20경 도착했다. 사실 '설마 사람사는 곳인데 잘곳 없을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숙소도 미리 안 알아보고 무작정 대덕면으로 왔는데 막상 버스에 내리고 나니 당혹감이 밀려왔다. 4~500미터 정도의 도로양옆에 가게 몇개 있는 정도의 정말 작은 면이였다. 깜깜한 거리에 불켜진 곳 하나도 안 보였다. 이러다 정말 노숙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길함과 이런 추운 날씨에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일단 뭐라도 있는지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걸었다. 2~300 미터 걸어가는데 불꺼진 조그만한 콜벤 영업 사무실 유리에 '민박' 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유리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했더니 천만 다행으로 주인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택시는 아닌거 같은데 영업방식은 콜택시 같은 콜벤이라는 차량이 주요 교통수단인거 같았다. 콜벤 차량을 운행하는 사무실 사장님 내외가 민박도 같이 하셔서 천만다행으로 숙박과 새벽에 수도암까지 이동차편도 한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지방은 서울처럼 생각하면 정말 안된다. 잘못하면 정말 객사할 수도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산행을 시작할 생각으로 새벽 4시 30분에 대덕에서 출발할 생각이였는데 콜벤 사장님이 너무 일찍 일어나기 싫으시다고 하셔서 겨우 사정해서 5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하기야 이런 시골에 그런 꼭두새벽에 콜벤 탄다는 사람이 일년에 몇명이나 있겠나....
5시 40분에 수도암에 도착해서 산행시작.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상태인데다 새벽이라 조용히 움직여야 할거 같아 수도암을 둘러보지는 않았다. 수도암은 예상보다는 상당히 큰 사찰이였다.
콜벤 사장님이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꺽어서 다리 건너면 바로 등산로가 나온다고 해서 수도암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꺽어보니 돌다리가 보였다. 일단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길따라 가는데... 어? 정상가는길 푯말이 나온다. 내가 지나온 방향을 가리킨다. '다리건너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나?' 다시 왔던길을 돌아가 다리 오른쪽으로 가본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쪽에 등산로 같은게 안보인다. 하... 초반부터 입구도 못찾아 해매는건가?
다리와 정상가는길 푯말 사이를 몇번 왔다갔다 하다 등산로 이정표를 발견했다. 너무 어두우니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냥 지나쳤다.
20분 헤매다 등산로에 진입했다. 수도산 정상까지는 2km 정도 거리
6시가 넘어서자 해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수도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 했는데 출발시간이 너무 늦었다.
동이 틀때 쯤 멋진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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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서리가 내렸다. 날이 쌀쌀하다. 이제 겨울에 접어드는게 실감난다. 봄 가을이 점점 실종되는거 같은 기후 변화다.
수도산 정상에 도착, 정말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수도지맥, 금오지맥, 백두대간 등 많은 산줄기가 꼭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져 있었다. 괜히 지도하고 나침반을 사고 싶어진다. 일출을 봤으면 정말 좋았을 것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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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점인 단지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도산 정상에서 왔던길을 조금 되돌아 오면 이정표를 볼수 있다. 불갑산의 추억이 생각난다. 이번엔 미리 사전준비를 하고 왔다 ㅎㅎ.
이번 종주 준비하면서 길을 잃어 해멜까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인적도 드물고 해도 짧아진 시기에 잘못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서 사전에 먼저 이길을 지나가신 산우들의 후기를 많이 찾아 보면서 길을 잃을 만한 곳들에 대한 체크를 많이 했다. 후기들의 공통된 조언은 '무조건 리본을 따라가라'. 종주 내내 잘 지키다 마지막에 이 조언을 무시했다 후회했다. 리본은 정말 많이 그리고 정말 적절하게 달려있었다. 가는 내내 리본 달아 주신 산우님들께 감사했다. 최소 2~30m에 하나씩은 리본이 달려 있었던거 같다. 나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있었고 최소한 바닥에 떨어져 있기라도 했다. 일단 길이 헤갈리면 무조건 반경 50m내에서 리본을 찾아 진행했다. 조심스럽게 가야 하긴 했지만 크게 길을 잃고 헤메지는 않았다(마지막 한번만 빼고... ㅠ.ㅠ).
단지봉으로 가다 뒤돌아본 수도산 장상 모습
이 종주 코스는 수도산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조망을 볼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대부분 나무와 잡목에 둘러싸인 숲으로 난 길을 지나가기 때문에 가는 내내 보는 재미는 별로 찾을 수가 없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지만 싸리나무, 산죽 그리고 이름모를 잡목들이 서로 붙잡고 때리고 난리를 치는걸 뿌리치고 가야 한다. 여름에 수풀이 우거지면 여기를 지나가는게 쉽지 않을거 같다. 헤치고 나기기도 힘들고 아마 길도 다 지워지지 않을가 싶다.
준희가 응원해준다. (준희야 고마워~~~.... 근데 요즘 뭐하니?)
단지봉 도착
수도산 이후 유일하게 산군을 조망할 수 있는곳,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저기 까지 가야 한다. 갑자기 발걸음이 서둘러진다.
정말 가는 내내 산죽(조릿대)덤불을 지겹게 마주친다. 낙엽이 떨어져도 산죽은 그대로다. 산죽도 상록수 인가?
좌대곡령 도착
목통령 이후부터는 길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주의해야 한다.
철책이 나타난다. 물론 여기서도 리본만 따라 가면 된다.
성만재, 갈수록 길이 안좋아진다. 온갖 잡목들 가지에 싸대기 맞기 일수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상당히 많이 온거 같은데 아직 까마득하게 멀어보인다.
여기부터는 비법정탐방로. 어차피 각오한거지만 그래도 잠시 생각을 고른다. 미리 알았으면 아마 이 종주를 선택하지 않았을거 같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랬어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만났다(?)
출입금지구역 부터는 리본이 싹 사라졌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다 제거한거 아닌가 싶다. 리본이 사라지자 긴장도가 급히 상승한다. 각별히 주의하면서 나아간다. 여기서 부터 이 코스의 가장 힘든 구간이 시작된다. 두리봉을 타고 넘어가서 가야산 상왕봉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표고차가 크고 코스 후반부라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에서 두 봉우리를 넘어야 하니 정말 힘들다. 스틱을 안가져온게 너무 아쉽다.
두리봉을 향해 오르막을 20분정도 올라갈쯤 앞쪽에서 낙엽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본능적으로 바로 알수 있었다. '멧돼지 다!' 북한산에서 이미 2번 정도 멧돼지를 만나본(?) 경험이 있어 멧돼지의 기척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는지 부스럭 소리에 자동으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일단 올라갈만한 나무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멧돼지도 낮선 기척을 느끼면 바로 경계하고 자리를 피한다. 이번에도 천만 다행으로 멧돼지가 오르막길 왼쪽 아래로 피해서 정면으로 마주치지는 않았다. 오르막 왼쪽 아래에서 경계하면서 동정을 살피고 있는 멧돼지 2마리가 보인다. 그리고 내 시야에 안보이는 쪽에서도 멧돼지 소리가 들린다.최소 3마리 이상인거 같다. 멧돼지도 집단 생활을 하나보다. 이전 북한산에서 멧돼지를 만난 경우는 전부 해질 무렵이였는데 이렇게 밝은 한낮에 멧돼지를 마주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떼로... 아무래도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서 사람들 발길이 없어 이 구역을 생활권으로 삼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그들의 나와바리를 침범한것이다. 얼마동안 멧돼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숨죽이고 얼음 상태를 유지했다. 사진을 찍어볼가 하다가 카메라 소리가 멧돼지를 자극할가 싶어 무서워서 참았다. 한참 동정을 살피던 멧돼지들이 반대쪽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한동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ㅎㅎㅎ. 진짜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였다. 사진을 못찍은게 아쉽다....
비탐지역으로 들어온 이후 안보이던 리본이 두리봉 정상에 도착하자 한가득 있다. 두리봉은 정상석이 따로 없었다.
두리봉 정상에서 한참 내려와 이제 마지막 상왕봉으로 간다. 점점 발바닥도 아파오고 힘도 떨어진다. 코스 후반으로 갈수록 고도를 가장 많이 올려야 하니 더 힘들다.
마지막 상왕봉으로 가느 구간은 육안으로는 길 구별이 잘 안된다. 정말 리본이 없으면 처음가는 사람은 찾아 갈 수가 없을거 같다. 문제 여기서 딱 한번 조언을 무시했다 크게 후회했다. 하필이면 육안으로 봤을 때 길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리본을 무시하고 내 판단을 따라 진행하다 결국 30분을 헤매다 원래 자리로 돌아와 리본을 따라 갔다. 정말 체력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알바(?)를 하니 정말 죽을거 같았다. 스틱만 있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드디어 목책이 나타난다. 비탐구간이 끝나는 구간인거 같다. 정상인거 같은 느낌인데 어딘지는 모르겠다.
목책을 하나 더 넘어야 비탐구간이 끝난다. 드디어 내가 기억하는 곳이 나타났다. 2년전 집중트렉으로 왔던 가야산. 저 목책 바로 옆에 출입금지 경고문과 CCTV가 있다. 저길 넘어가면서 또 찝찝함이 올라온다.
목책을 넘어 상왕봉(우두봉)으로 올라갔는데 국공직원이 나와 있었다. 내가 목책을 넘을 때 직원이 아래에 있었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 졌을가? 참 기분이 묘하다.
상왕봉(우두봉)
칠불봉
시간도 오후 4시를 넘어가고 몸도 많이 지쳐서 서둘러 만물상 코스로 하산을 했다. 백운동 탐방센터에서 택시를 타고 가야합동정류장으로 이동, 거기서 다시 대구행 버스를 타고 대구로 이동,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귀가를 했다.
종주를 마치면서 든 생각은 일단 이 코스를 다시 오고 싶은 생각도 없고 추천하고 싶지도 않다.
여러가지 불편한 점은 차제하고라도 일단 비법정탐방로를 지나야 한다는 점(그것도 꽤 긴 거리)이 가장 큰 이유다. 비법정탐방로 출입금지에 대해서는 등산인중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일련 수긍하는 점이 있지만 일단 이미 시행된 정책이고 그에 따라 생태계도 그에 맞춰져 변화되어 있는데 오늘 나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전상의 문제도 발생할 확률이 높은데 굳이 실정법을 어겨가면서 거길 들어가는게 맞나 싶다. 오늘 만나 멧돼지들 한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들도 좀 마음 편하게 살고 싶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