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산 아라메길 트렉이다.

서산은 처음이다.
도전트렉 덕분에 새로운 곳도 가 본다.

새해 시작이라 그런지
절에서도 산을 오르는 길에서도
제법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전 서해안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눈이 녹지 않고 여전히 추운 날이었다.

개심사 초입의 솔숲이 기분좋았다.

석문봉으로 가는 초반은
흙길에다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둘레길형 트렉으로 추천할 만하다.

그런데
석문봉으로 가는 후반은
암릉 구간이고
게다가 눈이 쌓인 곳이라
한 걸음 한 걸음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은 좁고
사람들이 제법 오르내리는 산이어서
길을 비켜주면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겨우 석문봉까지 갔는데
저 멀리 가야봉이 보인다.

1.7킬로라고 이정표에 되어 있다.
눈쌓인 좁은 암릉구간을
숨가쁘게 지나오고 보니
가야봉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나?
돌아갈 수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가야봉. 지척인 것 같은데 1.7킬로 구간은 참 길었다.

드디어 가야봉.

내려오는 길은
그늘진 곳이라 얼어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했다.

동행하던 사람하고
길을 다르게 잡아 혼자 내려왔다.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했다.

새해 첫 시작을
트렉으로 시작해서 좋았다.

하얀 눈을 밟고
계속 걷다보니
마음이 더 깨끗해지는 듯했다.

마을을 품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678m 산이지만
푹신한 흙길과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을
동시에 주는 산이었다.

상가리 저수지.


한 쪽은 바다,
한 쪽은 평야.
이 두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서산 아라메길!!!
새해 첫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 도전트렉은
전남 고흥 팔영산이다.

곡강마을에서 선녀봉까지는
천천히 숨고르며 가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제1봉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제 8봉 적취봉까지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암벽타기 하듯 온몸을 다 사용했고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난간 손잡이를 꼭 잡고도 아찔했다.

능선에서는
중심을 못 잡으면
강풍에 밀려서 넘어질 수도 있었다.

한파로 인한 칼바람과
예사롭지 않은 지형으로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거친 숨을 고르며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바다의 시원함과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표지석이 주는 반가움 덕분이었다.

적취봉에서
사방의 다도해 전경을 즐기고
마지막 깃대봉을 향해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팔영산 트렉은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걷는 섬트렉 같으면서도
10개의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는
험한 암릉 트렉이었다.

내가 겪어본
충주 월악산 영봉, 원주 감악산보다
더 어려운 산이었다.

깃대봉 정상에서
탑재~능가사로 혼자 내려오는 하산길은
푹신한 낙엽이 쌓인 흙길과
기분을 좋게 하는 삼나무 숲길이었다.

정상에 오를 때 그 고달팠던 마음을 순식간에 다 풀어주는
평화롭고 달콤한 오솔길이었다.
순간 스친 생각.
인생도 이런 맛으로 사는 것이었나?
비록 궂은 날씨와 험한 길을 만나 진땀을 뺐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잡념없이 전력질주하고 하산하는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경쾌하고 편안했다.

사량도 지리산-칠현산 트렉과
고흥 팔영산 트렉을 연속으로 해 내고 나니
어느 새 도전트렉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도 많이 덜어졌다.

세상살이가 두렵고 힘들게 느끼지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사량도 지리산과 고흥 팔영산을 꼭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번 주 도전트렉은 사량도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전날 통영으로 들어가서 6시 50분 첫 배를 타고 사량도에 도착한다.

칠현산과 고봉산 둘레길을 걷고 싶었으나 동행자가 지리산을 빼 놓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지리산을 먼저 올랐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오른다 싶더니 곧 울퉁불퉁 돌로 된 구간을 지나 급기야 칼날같이 뽀족한 암릉 능선구간, 아찔한 출렁다리와 직경사의 계단들을 거치며 가마봉 옥녀봉을 지나왔다.

작은 섬산이지만 아주 매운 맛을 보여주는 지리산. 바다의 평온함과 시원함으로 위로를 해 준다.

지금 보니 바위를 붙잡고 기어오르기도...
힘들어도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있어 서로 웃는다.
"칼날 위에 서다." "벼랑 끝에 서다."라는 말처럼 누구나 겪게 되는 엄중하고 힘들었던 인생이 연상되기도 하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까칠하게 사는 모난 인생을 생각해 보게 한 구간.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며 다시 힘을 얻는다.

지리산 정상에서 가마봉 옥녀봉 구간은 특히 울퉁불통한 암릉과 급경사 철계단과 출렁다리로 이어져서 진땀흘리고 헐떡거리며 무사히 지나가는 데만 온통 마음을 쓰느라 사진도 없구나. '사량도 지리산은 정말 매운 산이구나.'라는 기억 머리속 깊이 남긴 채...

드디어 사량대교가 보이는 지점에서 마을로 하산하여 지리산 트렉을 마쳤다.
오후에 칠현산트렉은 시간에 쫓길까봐 부지런히 걷기만 했고, 초반에 폭신한 흙길도 잠시 곧 이어지는 돌구간 능선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인내심을 또 한 번 시험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배시간에 맞추어 빠른 길로 하산하는데 낙엽이 잔뜩 쌓인 급경사 돌길은 특공대 훈련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인생은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거구나.'를 떠올리며 기쁘게 섬트렉을 마쳤다.
나는 바다를 끼고 사방을 둘러보며 걷는 섬트렉이 더 좋는 것같다.
이번 사량도 섬트렉은 지난 주 소백산 트렉보다 더 힘들게 느낀 도전트렉급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훨씬 경쾌하고 가벼웠다. 이제 도전트렉에 적응이 되어가는 건가? 어쨌든 기쁘다.

아침 6시50분 단양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죽령탐방휴게소에 내렸다.
날이 따뜻해 눈이 되지 못한 찬공기가 결로현상으로 보슬비처럼 내리는 길을 한참 걸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았고 얼굴에 찬공기를 느끼며 1시간 정도를 걷다가 해가 뜨면서 따뜻한 구간을 만났다.

해가 나오자 순식간에 안개가 사라져 시야가 밝아졌다. 한순간의 변화를 보며 우리 인생도 그렇겠거니 싶어 위안이 되었다.

연화봉대피소에 올라서 내려다 본 전망은 긴 오르막길로 힘들었던 마음을 다 털어주었다. 산에 걸쳐있는 구름바다는 멋진 풍경이었다.


11월 말에 왔다는 눈이 녹지 않고 있는 길을 따라 연화봉으로 오른다.
연화봉 주변은 통합트렉으로 전국에서 모여 토막강연을 듣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언제 또 그런 날이 올까?


비로봉을 향해 갈 때는 눈이 얼어있는 돌길을 지나야 했다. 아이젠이 없었다면 미끄러워지기 쉬운 구간이었다.
소백산은 세찬 눈보라와 설경이 제맛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따뜻한 날이어서 다행이라 싶었다.
마침 초미세먼지 나쁨으로 나오는 날씨임에도 1300미터가 넘는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갈길이 멀어 비로봉을 지나 서둘러 국망봉을 향해 갔는데 그쪽으로 길이 통제되어 어의곡 탐방안내소로 하산했다.
어의곡으로 들어서자 진한 잣향기가 코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숲이 주는 청량함에 힘을 얻어 지루하고 힘든 돌길 하산을 잘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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