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은 집에서 약 2시간 거리인 데다 코스 거리가 10km 내외여서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06:10분경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시속 110km 정도 되니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것 같다. 이건 뭐지 조금 더 달려본다 역시 흔들린다. 오늘 트렉 코스인 팔영산은 암산으로 봉우리가 8개가 넘는데 어떡하지 왠지 불안해진다. 

곡강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 순간 매서운 바람과 찬기운이 엄습한다. 불편하지 않을까 하며 껴 입고 온 내복이 고맙게 여겨지는 순간으로 패딩과 쟈켓을 겹쳐 입고 화장실 뒤로 보이는 펜션 옆길 쪽에 있는 들머리로 향한다.

 

일시: 2021. 12. 24.(토)

코스: 곡강마을 주차장- 선녀봉-유영봉(1봉)-성주봉-생황봉-사자봉-오로봉-두류봉-칠성봉-적취봉(8봉)-깃대봉-탑재-능가사-팔영산탐방지원센터

거리: 약 10km

 

08:58분  팔영산 들머리(이 때가 좋았지!)

 

 

들머리 입구의 탐방로 안내도를 살펴보고 20여분 오르면 이끼 사이로 물방울이 흘러내리다 가는 고드름처럼 얼어붙은  아담한 강산 폭포를 만나고 이어지는 대나무 숲길을 지나니 선녀봉 가는 첫 번째 계단길이 나타난다.

 

 

데크계단을 올라오니 남해의 시원한 조망과 사량도에선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구획정리가 잘 된 너른 논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선녀봉1 쉼터가 있다. 벌써 1봉? 아니지 1봉으로 착각했다는 인터넷 후기가 떠오른다.  

 

1 쉼터에서 바라본 선녀봉 가는 길, 이제 초반인데 암릉 계단에 난간길과 마주한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서 몸의 균형이 흔들릴까 봐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다시 철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는 길, 바람이 세게 부는데 다행히 바위틈 사이로 올라가는 길이라 묘하게 바람을 막아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보폭보다 높아 무릎으로 기고 난간을 붙잡고 팔힘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에서 다 올라간다. 

 

휴! 아름다운 풍광에 한 숨 돌리며 따뜻한 차 한모금을 마시고 긴장을 푼다.

건너편 암릉 1쉼터 쪽의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한 숨 돌리고 있으니 이어 올라오는 동행이 보인다.

 

 

선녀봉 2 쉼터에서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잠시 앉아있자니, 거의 대부분 암릉 덩어리인 오늘 트랙 코스를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살짝 염려가 된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자리는 바람으로 흔들려서 불안하다. 나 혼자 유독 바람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선녀봉에서 바라본 1~8봉이 험난해 보인다. 저 봉우리들의 길은 도대체 어떻게 나 있을까 이제부터 진짜인가보다. 

 

선녀봉에서 1봉 유영봉으로 가는길은 뜻밖에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진 길이어서 선녀봉 삼거리까지 쉽게 간다. 선녀봉 삼거리에서 좌우로 2봉과 1봉 길이 나뉘어 있고 200m 거리의 1봉을 왕복한 후에 2봉으로 가게 되어있어, 1봉까지는 철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도대체 계단을 오르는데 허공에서 불어대는 바람에 떨어질까 불안하기만 하다.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있기 불편해 주저앉아 사진을 찍는다. 1봉에서 바라본 2,3,4봉인가? 아래 삼거리 지도에서 검은선으로 되어 있는 2봉 구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2봉 어떻게 넘어왔는지 생각이 잘 안난다. 단지 2봉 성주봉에 오르니 이제 험한 구간은 다 통과했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숨이 쉬어질 뿐이다.  2봉에서 5봉은 비슷한 패턴으로 데크계단과 철계단을 오르고 내린다. 다행히 봉우리와 봉우리간 거리가 멀지 않아 힘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고 5봉 오로봉을 지나 6봉 두류봉으로 가려는데 길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오로지 철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깍아지른 칼 벽이다. 한쪽면은 직각으로 떨어지는 절벽이고 한쪽은 보폭이 높아 발 디디기 어려운 절벽으로 철난간을 붙잡고 빨리 이 구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인데 너무 길다. 팔에 힘이 떨어질까 불안이 스치는 순간 나무 아비타불이 튀어나온다. 아미타불님 바람 좀 재워주세요. 

 다 오르고 나니 우회길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전진만 할 수 있는 곳인데 나보다 조금 더 무서움타는 동행이 뒤에 오고 있다는 생각난다. 

 

7봉 칠성봉이 보이고 이제 정말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나온 것 같다.

두류봉삼거리로 내려와 다시 탐방로 안내도를 살핀다. 2봉에서 6봉까지가 매우 어려운 구간으로 되어 있다. 왜 초반에 봤을 때는 1봉에서 2봉 사이만 어려운 구간이라고 보았을까? 혼자만 본 게 아닌데...

 

칠성봉에서 8봉 적취봉으로 가고 있다.

 

드디어 8봉 적취봉, 고흥반도의 아름다운 다도해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조여드는 구간을 통과하고 난 후 무슨 조화인지 내 마음은 벌써 불안에서 벗어나 너덜거리는 혼 대신 성취감과 여유로 바꿔지려고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무서워하고 담담해지자 했던 사량도에서의 다짐을 떠올리며 웃음 짓는다.

 

8봉에서 내려와 헬기장 삼거리를 지나 깃대봉으로 가는 길은 편안한 길로 긴장했던 오감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정상석 부근은 군대 시설물? 과 전선들이 어수선하게 설치되어 있어 사진만 찍고 바로 되돌아서 탑재 방향으로 향하다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언덕에 앉아 함께한 동행들과 원밀과 떡 사과로 점심식사를 한다.  각자 한 마디씩 짧은 수다 긴 호흡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제 2.2km 남은 하산길  능가사를 지나 탐방안내소 주차장에서 1시간 후에 탈 수 있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빠르게 걷다 능가사를 들릴 경우 어차피 버스시간에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아 천천히 가도 되겠다 싶었는데 능가사가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니 그냥 통과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속도를 낸다.  모처럼 흙을 밟고 걷는 하산길은 달콤하고 부드럽다. 긴장하고 애태운 강도에 비해 시간과 거리는 많지 않아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암릉구간의 봉우리마다의 철계단 데크계단 철난간에 바람이 불어대니 몹시 불안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평화가 찾아온 트렉종료시간...오늘도 나혼자 했으면 상상하기 싫다. 함께한 도반님들께 감사드린다. 

가오치항에서  07:00 배를 타고 사량도항에 도착하니 상도행 하도행 시내버스가 각각 대기 중입니다. 배 안에서 만난 동행이 목적지로 가는 상도행 버스를 안내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오늘은 진행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량도항

일자: 2021.12.18.(토)

코스: <오전> 수우도전망대-지리망산-가마봉-옥녀봉-금평항(상도), <오후> 사랑 대교-칠현봉-망봉-덕동-사량도항(하도)

거리: 약 14.5km

 

버스에서 내리면, 수우도 조망 전망대 길 건너에 들머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오늘은 풍광에 팔려 수리를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을 염두에 두며 지리산을 향해 트랙을 시작합니다.

흙보다 바위가 많은 것 같은 지리산 트랙 길 초반입니다. 

풍광이 좋아서 잠깐씩 한눈팔게 되는 남해바다, 새벽에 추워서 껴입었던 패딩을 벗고 쟈켓만 입어도 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고 바람도 없고 하늘도 맑아 트랙 하기 좋은 날입니다.  

09:08 지리산 해발 397.8m 정상에 올라와 있으니 고도보다 더 높게 여겨집니다.

푸른 바다에 가지런히 펼쳐지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늘도 뷰는 최고입니다.

지리산에서 가마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마음은 우회로로 가고 싶지만 도전 트랙인걸 상기하며 폭이 좁아 날이 선 듯해 보이는 위험구간으로 가봅니다. 이제 쫄깃한 심장은 내려놓고 담담해지려고 합니다.

 

가운데 가마봉과 옥녀봉 맞은편으로 오후 코스인 칠현봉이 보입니다.

아직 좀 더 가야 할 것 같았던 가마봉이 암릉 하나를 올라오니 바로 앞에 있습니다. 

가마봉에서 바라본 옥녀봉 흔들 다리가 보입니다. 순한 구석이라곤 없는 지리망산이 잠시도 한눈팔 수없게 합니다. 

연이어 두 군데 있는 흔들 다리를 건너면 옥녀봉입니다. 마치 정신 차리지 않으면 통과시켜주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은 지리망산, 이제 금평항 쪽으로 하산입니다.

 

5분 차이로 하도행 버스를 타지 못한 덕분에 여유 있게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사량 대교를 지나 칠현산으로 갑니다. 식당쥔장에게 분명 칠현산으로 가려면 사량대교 건너 화장실 왼편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왔음에도 인지하지 않고 동행이 있으니 하고 발길이 가는 대로 가다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들머리를 놓치고 한참 내려온 걸 동행분의 연락을 받고 다시 되돌아갑니다.  내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 참 민망합니다. 어느 순간 의지형으로 변해서 기대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서 다시 마음을 정리해봅니다. 동행분에게는 말씀 못 드렸는데 미안했습니다.  

 

칠현봉 트랙 길도 지리망산 능선처럼 폭이 좁고 뾰족한 바윗길의 연속입니다.  이런 곳에서 쾌감과 감동을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텐데 저는 아직은 사방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기에 이런 길이 겨우 용서된다는 정도이군요.

오전에 지리산은 그런대로 산행하시는 분들이 좀 있었는데, 이곳 칠현산은 우리 팀 이왼 한 사람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파르고 한적한 구간에서 홀로 트랙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올라오고 동행분들이 오늘따라 더 고맙고 든든하게 여겨집니다.

칠현봉에서 바라보는 지리망산

 15:10분경 저 위의 칠현봉에 도착합니다. 건너편 난간이 보이는 곳은 망 봉입니다. 

이제 칠현산 마지막 구간 망봉입니다.

망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지리망산, 옥녀봉 흔들 다리가 실제보다 아찔해 보입니다.

망봉에서 덕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낙엽과 급경사로 미끄러워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덕동마을에서 사량 대교로 다시 돌아오고 고동산 숲둘레길은 배 시간이 맞지 않아 들머리를 통과 금평항에 도착, 불 밝힌 배가 반갑습니다.

오늘은 홀로 트랙 했으면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 멀리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함께 한 동행분들이 있어 마음 놓고 어려운 구간도 잘 통과했습니다. 트랙 시작할 때 목표였던 오로지 수리에 집중하기가 상황상 저절로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감사한 하루입니다.   

 

일자: 2021.12.11(토)

코스: 관음사탐방센터~삼각봉 대피소~백록담~진달래밭 대피소~사라오름~속밭대피소~성판악 주차장

거리: 약 20km

 

한라산은 오래전 20대 후반에 가보긴 했었는데 길고 지루했던 기억이 왼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 트렉이 초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숙소에서 경행을 하고 택시로 관음사 탐방센터로 이동,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서 김밥과 물을 챙긴 후 탐방로 입구에서 예약한 QR코드를 찍고 06:13분 읽기 트렉을 시작합니다. 

06:00~08:00에 예약된 인원이 500명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출발하고 있어서인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숲이지만 생동감으로 열기가 느껴집니다. 어둠도 잠시 주변 숲이 드러나고 탐라계곡 목교를 지나 화장실이 있는 곳까지 왔나 봅니다. 이곳까지는 완경사인 데다가 어둠 속에서 걸으니 발걸음이 빠르고 집중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안전한 장소에서는 어두운 곳도 트랙 하기에 좋은 듯합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출퇴근 시 사용한다는 모노레일이 탐방로 입구부터 정상부 가까이까지 이어진다는데 실제로 타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군요.

 

해발 1,000m 지점에 오니 안개가 진하게 몰려옵니다.  오늘 시야가 다 가려지는 건 아닌지 은근 염려가 되는데 트랙 중에 여러 번 경험했기에 개의치 않기로 합니다.

 

1,000m를 조금 지나면서부터 눈이 조금씩 보이더니 이제 제법 많아져 아이젠이 필요합니다.

오늘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읽기 트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삼각봉과 대피소가 눈앞에 있습니다. 미세먼지도 안개도 없는 맑은 하늘이 너무 멋집니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김밥과 원밀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땀에 젖은 옷도 정리하며 숨 고르기 합니다.

용진각 현수교에서 바라보이는 백록담과 하늘, 이제 정상이 1.9km밖에 안 남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이름 모를 수종들과 주목들이 눈에 띄고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풍광은 여유로운데 경사가 심해지며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한라산은 등산로가 넓고 정비가 무척 잘 되어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군요. 누군가가 '힘드시죠' '네~'  또 누군가가 '15분만 더 가면 됩니다' 등 격려의 말에 서로서로 힘을 보탭니다.  

수려한 경관에 힘듦을 잊어버리는 순간입니다. 누구 것 인지도 모를 거친 숨소리들이 환호성으로 바뀌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라왔던 어느 팀에서 누군가 "아 행복해 너무 좋아 이제 저녁에 술 한잔만 하는 돼"하는 소리를 들으며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연이어 펼쳐지는 장관에 무거운 다리는 사라지고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하며 몸이 가벼워집니다. 

오늘 한라산 하늘은 갖가지 형상의 구름으로 예술입니다. 그냥 멋지다고 하기보단 신비롭습니다. 

백록담

'한라산 동능 정상'이라고 누가 고사목에 새겨 놓았을까요? 

백록담 인증사진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 엄두를 못 내고 사진 찍는 틈 사이에 가방으로... 11:55분

한라산 정상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많군요. 경치 감상하랴 사람 구경하랴 눈이 바쁩니다. 이 와중에 저도 동료가 가져온 따뜻한 컵라면을 한숨에 해치우고 잠시 숨 고르기 합니다. 

이제 하산할 시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정상을 뒤덮을 것만 같은 운해가 한쪽에서 밀려옵니다.

길고 긴 인증샷 대기줄 사이로 시간이 지체된다고 사진 조금씩만 찍으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됩니다.

이제 성판악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고지대 평원? 제주 한라산만의 특이한 검은 현무암과 고지대 숲 풍경이 육지와 다르게 이국적으로 느껴집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백록담에서 성판악으로 하산하는 중에 진달래밭 대피소를 지나 속밭대피소 사이에 있는 사라오름 산정호수입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명성처럼 특별히 뭔가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아마도 봄, 여름에 와야 좋을 것 같습니다.

사라오름길

헐벗은 활엽수와 푸른 조릿대의 조화가 다정하게 보입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인가요?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천연보호수 굴거리나무, 따뜻한 곳에서 서식하지만 한라산 추운 곳에서도 군락을 이우며 살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겨울에는 잎이 쳐진 듯 하지만 여름에는 잎이 넓게 펼쳐진다고 합니다.

성판악 탐방로 입구

15:57분 성판악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네요. 한라산은 오르거나 내리는 동안 하산길의 사라오름을 제외하곤 샛길이 없어  길을 헤멜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쉼 없이 올라갔다 쉼 없이 내려온 느낌으로, 높은 고도가 무색할 만큼 등산로가 데크와 계단으로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 오히려 약간의 아쉬움이 생길 정도입니다. 제주도가 세계문화유산이란 자부심을 한라산에도 많이 실어놓은 듯합니다. 덕분에 안전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방하칩과 기분 좋음으로 몸은 벌써 피로가 풀린 듯 가볍습니다.

시골쥐와 서울쥐가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쥐가 상경하여 서울쥐 집에서 편히 쉬고 다음날 서울쥐를 따라 열심히 하루 종일 산을 다녔습니다.

 

트렉 일시: 2021. 12. 06.(토)

트렉지: 서울 북한산, 우이동-영봉- 백운대- 문수봉- 비봉- 족두리봉-불광중학교

거리: 약 16km

 

북한산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말에 서슴지 않고 올라오라고 하시는 도반님 덕분에 망설임 없이 북한산 트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새벽 어두운 산길을 피하고자 우이역에서 우이령길로 가다 중간쉼터에서 경행과 준비운동을 하고 07:05분경 읽기 트랙을 시작합니다. 육모정고개 아래쯤에서 어스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스며드는 걸 보며 날씨 걱정을 버립니다. 이제 첫 번째로 만나야 할 영봉을 향해 기대 반 설렘반으로 오릅니다.

 

영봉 가는 우이능선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입니다. 어두움을 떨치며 펼쳐지는 산아래 모습이 저 맞은편 산 능선 못지않게 인상적입니다.

영봉 가는 길, 예상치 못한 미끄럽고 경사진 암릉입니다. 한 손은 스틱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지지대를 잡아야 하고 지지대 폭이 넓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팔에 꽤 힘이 들어간 구간입니다. 

 

미끄러워서 쫄깃했던 구간을 지나니 시원하게 사방이 열립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제각기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군요. 

 

09:10 두 시간여만에 오른 영봉(해발 604m) 바로 뒤에 인수봉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영봉인데 마치 인수봉에 있는 것 같군요. 바로 뒤 인수봉은 다행히 트럭 코스는 아니고 암벽 타기 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영봉에서 하루재를 거쳐 북한산 산악특수구조대산악 특수구조대 건물 앞에서 구조대원 따라 잠시 아이젠을 점검합니다. 산악 특수구조대 건물은 여기 북한산에서 처음 봅니다. 아무래도 오늘 트렉이 약간 수상합니다. 출발 시에는 설마 눈이 녹고 없겠지 했는데 녹지 않은 눈이 조금씩 있으면서 얼어붙어 미끄럽기 시작합니다. 

 

조심조심 위험구간을 지나서

백운대산장 쉼터에 도착하니 따뜻한 뭔가가 생각나는데 폐쇄된 산장은 말없이 쉼터만 제공합니다. 폐쇄된 산장에 대해 한 분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초콜릿 하나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커다란 바위 위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이는군요. 바로 다음 코스인 백운대라 하는데 아찔하게 여겨집니다. 

 

백운대 오르는 중턱 쯤에서 바로 앞을 가로막는 만경대, 이제 시야에 들어오는 봉우리나 능선들 모두 기세 등등합니다.

백운대 오르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긴장하고 심장 쫄깃할 것 같은 것은 제 생각이겠지요. 사고위험 경고문들이 더 긴장되게 하고 '우~~ 저만 무서운 거 아니겠죠!'  그런데 같이 온 도반님은 자주 온 곳이라며 아무렇지도 않으신 듯합니다. 긴장한 탓에 사진 찍기도 불편했던 순간이 어색해 보입니다.

백운대 정상을 향하여...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추락할 것 같은 구간. 여기는 그 흔한 데크 시설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면 묘미가 떨어져서 일까요, 아무튼 오늘 트렉의 하이라이트 구간입니다. 사진도 조심하느라 잘 못 찍었네요.

우측은 백운대에서 내려와 다시 올라가야 할 노적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노적봉에서 용암문-동장대- 대동문-보국문- 대성문-대남문을 통과하며 옛날 한양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북한산이 처음인 제게는 이 성곽 코스들 하나하나가 한양 구경하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대남문에서 맞은편에서 오는 한 팀에게 문수봉 길을 물으니 오르막은 괜찮지만 내리막이 바위 급경사에 미끄럽고 위험해서 가면 안된다는 말들을 하셔서 우회하기로 합니다. 이미 시간도 14:30분이 넘어가서 천천히 조심조심해서라도 문수봉을 가보기엔 남은 구간이 많아 어렵다 판단을 합니다. 

승가봉과 사모바위를 지나고 비봉도 아래에서 진흥왕순수비를 바라보며 우회합니다. 

향로봉에서 바라보이는 마지막 구간인 족두리봉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만치 않군요. 

족두리봉에서 또 꼭대기에 오를 땐 스틱도 내려놓고 기어올랐습니다. 해발 370m밖에 안 되는데 뾰족한 봉우리위에서 바람 맞으며 서 있는데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드디어 서둘러 하산합니다. 하산길 곧 어둠이 몰려올 듯 한 족두리봉 길에서 어느 분이 알려준 대로 능선길 따라 내려오다 다시 길이 애매해진 순간 나타난 남자분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하산길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이 길은 하산할 수 있는 빠른 길이었나 봅니다. 목표지점은 불광역인데 불광중학교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랜턴을 켜고 하산해야 했기에 어차피 불광역으로는 거리가 한참 더 멀고 산길이라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말로만 듣던 북한산 체험을 단단히 했습니다. 트랙 하러 서울로 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더더욱 북한산을 접근할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오늘은 북한산이 가슴 깊숙이 들어온 날입니다. 설악산 공룡능선과 서북능선을 다녀온 이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내게 더 이상 어려운 구간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높은 암릉이나 바위들을 본능적으로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북한산 풍광은 더없이 좋았지만 그에 따른 심장 쫄깃함이란 대가도 많이 치렀습니다.

저와는 달리 괜찮다고 하시는 도반님이 함께 하셔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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