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겨울의 눈산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 맛을 모르는가 보다.
눈이나 비가 오면 일단 부담스럽다.

오늘 오른 홍천 계방산은 1577미터.
운두령 고개에서 시작한다.
바람은 매섭고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 끝이 시리다.
게다가 산악회 대형버스와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초반에는 한 줄로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밀려 올라갔는데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지나면서
그나마 틈이 생겼다.

계방산 정상 1km 전에 나타나는 전망대.
사람들이 많고 여기저기 컵라면 끓여먹는 모둠들이 많아 바로 정상을 향해서 간다.

정상에서도
인증샷 줄이 길고
컵라면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계방산을 이렇게 전국에서 오는 이유가 뭘까?" 라고 물어봤더니
소백산보다 오르내림이 편하고 전망이 좋고(날 좋으면 설악산도 보이니까) 눈산이라서 다들 좋아한다고...

혼잡한 정상석 주변을 피해
서둘러 자동차 야영장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찬바람에 싸라기 눈이 희끗 보이고 상고대도 보인다.

다행히 좀 더 내려오니
바람도 잦아지고 그래도 걸을 만했다.
눈과 빙판길만 조심하면 된다.

찬바람 부는 응달을 걷다가
바람없고 햇살이 비치는 곳을 만나면 얼마나 고맙고 감미롭던지...
넘어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빙판길을 지나 드디어 종착지.
푸른 나무들과 폭신한 흙길이
너무 반갑다.

도착한 곳은
자동차야영장과 이승복 생가.

겨울의 매운 맛을 느끼게 해 준
계방산 트렉.
23회차 수료를 하게 되어
더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서산 아라메길 트렉이다.

서산은 처음이다.
도전트렉 덕분에 새로운 곳도 가 본다.

새해 시작이라 그런지
절에서도 산을 오르는 길에서도
제법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전 서해안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눈이 녹지 않고 여전히 추운 날이었다.

개심사 초입의 솔숲이 기분좋았다.

석문봉으로 가는 초반은
흙길에다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둘레길형 트렉으로 추천할 만하다.

그런데
석문봉으로 가는 후반은
암릉 구간이고
게다가 눈이 쌓인 곳이라
한 걸음 한 걸음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은 좁고
사람들이 제법 오르내리는 산이어서
길을 비켜주면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겨우 석문봉까지 갔는데
저 멀리 가야봉이 보인다.

1.7킬로라고 이정표에 되어 있다.
눈쌓인 좁은 암릉구간을
숨가쁘게 지나오고 보니
가야봉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나?
돌아갈 수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가야봉. 지척인 것 같은데 1.7킬로 구간은 참 길었다.

드디어 가야봉.

내려오는 길은
그늘진 곳이라 얼어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했다.

동행하던 사람하고
길을 다르게 잡아 혼자 내려왔다.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했다.

새해 첫 시작을
트렉으로 시작해서 좋았다.

하얀 눈을 밟고
계속 걷다보니
마음이 더 깨끗해지는 듯했다.

마을을 품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678m 산이지만
푹신한 흙길과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을
동시에 주는 산이었다.

상가리 저수지.


한 쪽은 바다,
한 쪽은 평야.
이 두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서산 아라메길!!!
새해 첫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 도전트렉은
전남 고흥 팔영산이다.

곡강마을에서 선녀봉까지는
천천히 숨고르며 가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제1봉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제 8봉 적취봉까지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암벽타기 하듯 온몸을 다 사용했고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난간 손잡이를 꼭 잡고도 아찔했다.

능선에서는
중심을 못 잡으면
강풍에 밀려서 넘어질 수도 있었다.

한파로 인한 칼바람과
예사롭지 않은 지형으로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거친 숨을 고르며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바다의 시원함과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표지석이 주는 반가움 덕분이었다.

적취봉에서
사방의 다도해 전경을 즐기고
마지막 깃대봉을 향해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팔영산 트렉은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걷는 섬트렉 같으면서도
10개의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는
험한 암릉 트렉이었다.

내가 겪어본
충주 월악산 영봉, 원주 감악산보다
더 어려운 산이었다.

깃대봉 정상에서
탑재~능가사로 혼자 내려오는 하산길은
푹신한 낙엽이 쌓인 흙길과
기분을 좋게 하는 삼나무 숲길이었다.

정상에 오를 때 그 고달팠던 마음을 순식간에 다 풀어주는
평화롭고 달콤한 오솔길이었다.
순간 스친 생각.
인생도 이런 맛으로 사는 것이었나?
비록 궂은 날씨와 험한 길을 만나 진땀을 뺐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잡념없이 전력질주하고 하산하는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경쾌하고 편안했다.

사량도 지리산-칠현산 트렉과
고흥 팔영산 트렉을 연속으로 해 내고 나니
어느 새 도전트렉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도 많이 덜어졌다.

세상살이가 두렵고 힘들게 느끼지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사량도 지리산과 고흥 팔영산을 꼭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번 주 도전트렉은 사량도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전날 통영으로 들어가서 6시 50분 첫 배를 타고 사량도에 도착한다.

칠현산과 고봉산 둘레길을 걷고 싶었으나 동행자가 지리산을 빼 놓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지리산을 먼저 올랐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오른다 싶더니 곧 울퉁불퉁 돌로 된 구간을 지나 급기야 칼날같이 뽀족한 암릉 능선구간, 아찔한 출렁다리와 직경사의 계단들을 거치며 가마봉 옥녀봉을 지나왔다.

작은 섬산이지만 아주 매운 맛을 보여주는 지리산. 바다의 평온함과 시원함으로 위로를 해 준다.

지금 보니 바위를 붙잡고 기어오르기도...
힘들어도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있어 서로 웃는다.
"칼날 위에 서다." "벼랑 끝에 서다."라는 말처럼 누구나 겪게 되는 엄중하고 힘들었던 인생이 연상되기도 하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까칠하게 사는 모난 인생을 생각해 보게 한 구간.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며 다시 힘을 얻는다.

지리산 정상에서 가마봉 옥녀봉 구간은 특히 울퉁불통한 암릉과 급경사 철계단과 출렁다리로 이어져서 진땀흘리고 헐떡거리며 무사히 지나가는 데만 온통 마음을 쓰느라 사진도 없구나. '사량도 지리산은 정말 매운 산이구나.'라는 기억 머리속 깊이 남긴 채...

드디어 사량대교가 보이는 지점에서 마을로 하산하여 지리산 트렉을 마쳤다.
오후에 칠현산트렉은 시간에 쫓길까봐 부지런히 걷기만 했고, 초반에 폭신한 흙길도 잠시 곧 이어지는 돌구간 능선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인내심을 또 한 번 시험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배시간에 맞추어 빠른 길로 하산하는데 낙엽이 잔뜩 쌓인 급경사 돌길은 특공대 훈련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인생은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거구나.'를 떠올리며 기쁘게 섬트렉을 마쳤다.
나는 바다를 끼고 사방을 둘러보며 걷는 섬트렉이 더 좋는 것같다.
이번 사량도 섬트렉은 지난 주 소백산 트렉보다 더 힘들게 느낀 도전트렉급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훨씬 경쾌하고 가벼웠다. 이제 도전트렉에 적응이 되어가는 건가? 어쨌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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