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시. 바다에 가까운 동해시에는 거대한 산체, 두타산과 청옥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산 사이에는 독특한 지형의 무릉계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조금만 올라 둘러보면 온통 바위로 덮인 산인데다, 산자락에 수직으로 서 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에 연신 사진을 찍거나 그저 감상하느라 자주 서게 됩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풍류객들의 놀이터로 이름이 높았던 무릉계곡을 상류에서부터 하산하다 보면 이곳은 바닥 또한 온통 바위임을 발견하게 돼 일견 산 전체가 암각 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증도 생길 정도입니다.

 

  • 트렉일자: 2022년 8월 6일(토)
  • 트렉코스: 무릉계곡 두타산 들머리(삼화사 지나서) -> 두타산성 -> 대궐터 -> 두타산 정상 -> 청옥산 -> 연칠성령 -> 칠성폭포 -> 무릉계곡
  • 교통: 자차
  • 날씨:  구름이 낀 비교적 맑은 날씨. 기온은 25~30도, 바람은 초속 2~4m.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6월에 이 두타산의 장관을 즐길 수 있게 코스(베틀바위 산성길, 마천루 협곡)를 조성해 개방하면서 약 10개월 새 7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을 정도로 두타산은 이제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한 곳이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느꼈듯이 이들 코스 탐방객들 대부분이 두타산의 정상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그 넓은 주차장이 꽉 찬다는 주말인데도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사람이 10명도 안됐으니까요. 산성길과 마천루 코스를 타는데 들어가는 3~4시간에 추가로 4시간 가량이 더 걸리는 길인데다, 해발 4~5백미터 주변에 조성된 코스를 벗어나 본격 산행이 시작되면 조망이 없는 고바우 육산 숲길을 한참 올라가야 두타산 정상에 닿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름만으로는 두타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청옥산은 더 합니다. 정상석 주변에 전날 비박을 했던 사람들의 주인없는 배낭 말고는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가는 길 뿐만 아니라 청옥산에서 연칠성령(연칠성 고개마루)으로 하산하는 길에서도 내내 혼자였으니까요.

 

구름이 좀 있지만 오늘 날씨 맑은 편입니다. 초입부터 빨아들이는 듯한 경치로 맞이하는 두타산, 십중팔구 이 무릉계곡 덕택일 겁니다. 옛부터 많이들 다녀가고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런 자연물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가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터이지만. 

 

매표소를 지나 무릉계곡으로 진입하면 맨 먼저 베틀바위로 향하는 들머리가 나오고 그 다음은 삼화사를 거쳐 좀 오르다 보면 두타산성과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두타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으나 베틀바위길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일전에 걸어본 곳이라 저는 두타산성을 거쳐 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합니다. 아래 오른쪽 표지판에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1-1이 표기가 돼 있는데 1-10이 정상입니다. 고도가 대략 100~150m 오를 때마다 두번째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숫자가 바뀔 때마다 작은 위안이 됩니다. 앞 숫자는 코스 번호로 두타산 코스는 1번, 청옥산 코스는 3번으로 표기하는 식입니다.  

 

30분가량 오르면 닿게 되는 두타산성입니다. 안내판이 있지 않으면 이곳에 산성이 있었다는 걸 알기 어려울 정도로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두타산은 선이 굵직하고 우람한 산체이면서, 중턱부터 하부까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경사에 바위 절벽이 붙어 있는 지형입니다. 좀 가까이서 보면 웅장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산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3시간 가까이 쳐야 하는 정상에 오르기까지 이런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두타산성과 12폭포를 지나면서 베틀바위 코스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정상으로 가는 길을 걷다 보면 본격적으로 등산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이름도 깔딱고개 입구입니다. 전망도 없고 경사가 급한 육산이라는 점 말고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긴 오르막길이 해발 800m 높이까지 이어집니다.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는 두타(頭陀)의 뜻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거하다, 떨어버리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두따(dhuta) 정도는 문득문득 생각나는 길입니다. 

 

도열한 소나무들과 함께 능선 위 열려 있는 하늘이 반갑습니다. 대궐터라는 곳입니다. 여긴 대궐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그냥 상상만 해야 할 듯 합니다.

 

대궐터에서 약 500m 정도의 완만한 능선길은 소나무가 주인입니다. 소나무숲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길 양옆과 그 아래 사면이 모두 아름드리 소나무입니다. 이런 높이에서 이만한 규모의 소나무숲은 이곳 말고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시 두타산 청옥산 등산안내도를 꺼내 봅니다. 지형을 보면 깔딱고개를 지나도 고도는 아직도 900m가 안되고 여전히 정상까지는 근 500m가 남아 있는, 긴 오르막길입니다. 사실 초반의 깔딱고개 보다는 이곳이 정말 숨이 차는 구간입니다. 제법 능선을 걸었음에도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 두타산 정상은 아직도 저만치에 있습니다. ㅠㅠ 해발 150m에서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드뎌 정상! 널찍할 뿐더러 조망도 트인 곳입니다. 벤치도 몇 자리 놓여 있어 편안~하게 앉아 주변 경치를 보며 고행길을 끝낸 후의 달달함을 맛봅니다. 멀리 박달재 넘어 넉넉하게 솟아 있는 청옥산도 보입니다.

 

두타산 정상에서 다시 청옥산 정상까지는 4km, 약 1시간 30분 거리입니다. 박달령(혹은 박달재)이라는 고개를 거쳐가는데, 원래 아래서부터 이곳까지 바로 이어지는 학등이라는 등산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난 위험지역이라고 폐쇄를 해 놓았는데, 안내문중 '숲길이 아님'에는 동의하면서도 '조난 위험지역'이라는 말에는 좀...

 

박달령을 거쳐 가는 이 길은 오늘 같은 여름 날씨에는 눈부신 숲길입니다.

 

청옥산 정상입니다. 좀 싱겁게 생겼죠? 높이는 두타산보다 50m 더 높은데, 전망이라든가 다른 특색이 더 있었더라면 두타산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존재감이 더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청옥산에서 연칠성령이라는 고갯마루를 지나 고적대라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형상 두타산과 청옥산을 마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패스입니다. 하산도 즐겨야 하고, 오늘 오를만큼 올라서 오를 마음이 안납니다. 대신 그 방향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망군대라는 전망대까지는 가 보기로 합니다. 

망군대에서 바라본 고적대

큼지막한 바위 무더기인데 올라서면 오늘 코스에서 최고의 조망을 선사해 주는 곳입니다.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 덕에 몸과 마음도 편안해 집니다. 

 

고적대로 가는 길은 여기에서 멈추고 다음을 기약하며 연칠성령으로 되돌아가 하산을 시작합니다. 약 700m 지점인 칠성폭포까지는 급경사로 떨어집니다. 사진의 표지판에서 보듯 이곳도 고갯마루는 10번을 달고 있습니다.

 

이 코스로 하산하면 무릉계곡의 상류지형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하류와 마찬가지로 온통 너른 암반지대 입니다. 계곡 전체 바닥이 암반으로 이어져 있는 셈이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경관입니다.

 

이 연칠성령 하산길로 내려오다 보면 큰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하이라이트라고 합니다. 동의합니다. 평지인 하산구간이 시작되기 직전에서 만나는 신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인데, 작은 오르막길 2~30m만 올라가면 두타산의 장관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한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경치에 취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미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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