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도전트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이 이제 거의 1년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힘든 트렉이 많았지만 개고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딱히 기억에 없는데, 이번에 다녀온 삼척의 코스는 그야말로 처절한 개고생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응봉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에서 여름의 울창한 수풀에 가려진 길을 못찾아 이러다 정말 조난당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속에 여름 숲을 뚫으며 내려왔던 기억, 또 한 번은 지도나 GPS경로로는 분명히 보여야 할 하산길이 안보여 자칫 비가 오는 산속에서 어둠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비를 맞아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산비탈을 질척질척 내려왔던 기억. 정말 오래 갈 기억이면서 한편으로는 큰 탈없이 무사히 마쳐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트렉일자: 2022년 7월 16일(토)

트렉코스: 강원대 도계캠퍼스 -> 육백산 정상 -> 사금지맥 분기점 -> 응봉산 정상 -> 사금지맥 분기점 -> 이끼폭포 -> 소재말. 약 19km

교통: 자차

날씨: 트렉중 기온은 20~25도. 오전은 구름낀 맑은 날씨. 오후 들어 비가 오고 하산할 때(오후 6시)쯤 그침. 

 

오늘 날씨는 오전과 이른 오후는 구름은 끼지만 비교적 맑은 날씨, 오후 한때 비가 예보돼 있습니다. 지표면 날씨 예보고 육백산이나 응봉산 그리고 주변 능선길이 모두 1천미터가 넘어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코스의 시작인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입니다. 해발 800m가 살짝 넘는 지점에 있어 우리나라 대학캠퍼스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랍니다. 대학캠퍼스 안에 들어오면 금방 시간을 거스르는 순간 이동이 되면서 그때 그시절이 떠오릅니다. 여름 숲의 푸르름과 느낌이 비슷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 적지 않은 시간을 암기에 쓰게 되는데, 인간의 뇌가 컴퓨터처럼 한번 기억된 것이면 기억장치가 고장나지 않는 한 아무 때나 찾아 쓸 수 있어 뇌를 그렇게 꺼내 온 데이타와 자료를 소화하고 이해하는 데만 쓸 수 있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종이 될 것 같다는. 비슷한 생각을 영화에 옮겨 놓은 걸 본 적은 있습니다. 태양에서 온 인간이 지구에 떨어지더니 몇일만에 전지구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며칠만에 읽어 버리고 활동을 시작한다는 얘기입니다.

 

산행 코스는 캠퍼스의 정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캠퍼스 끝지점에서 보이는 정자 뒤쪽 들머리에서 시작합니다. 들머리에서 한 20분 정도 오르면 임도에 올라서게 되고, 육백산 정상 이정표와 나무계단이 반겨 줍니다. 찾는 이가 많지 않고 요 며칠 비가 와서 수풀이 우거져 해는 비치지만 신발이 금방 젖습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숲길을 걷는 맛은 늘 특별합니다. 게다가 걷는 길은 낙엽과 풀로 그득해 폭신폭신 합니다.  이렇게 얌전하게 펼쳐진 길을 또 2-30분 걷다 보면 다시 임도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 코스의 이정표는 이 초입 구간과 육백산 정상까지 정도만 비교적 친절하게 돼 있고 나머지는 앞선 사람들이 남긴 안내와 흔적에 의존해야 합니다. 아래 사진(오른쪽)의 이정표만 하더라도 육백산 방향은 제대로 가리키는데 살짝 왼쪽으로 틀어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리본도 보이고 합니다. 사실 이 지점부터 육백산 정상까지는 오르막길이 완만하면서 거리도 얼마 안되고(600m), 숲도 그리 빼곡하지는 않아 방향만 잘 잡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1시간 남짓 왔나요? 벌써 육백산 정상입니다. 정상석은 큼지막한데 주변 경관이 수풀에 막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응봉산을 가기 위해 다시 300m 걸어 내려가야 만나는 삼거리(오른쪽 사진)가 쉼터의 편안함을 줍니다. 

 

이 육백산 정상 주변을 걸었던 분들이 모두 한소리로 말하듯이, 이 높이까지 왔는데 주변이 모두 평탄~ 합니다. 나무를 걷어내면 1천미터 높이에 있는 거대한 개활지로 보일 겁니다. 삼척에 여행와서 둘레길이 아닌, 1천미터 고도의 평탄하고 울창한 숲길을 걷고 싶다면 더 없이 좋을 곳입니다. 오대산 노인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도 이런 고위 평탄면이 있는데, 그곳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걷는 맛이 있습니다.  

 

오늘 비교적 상쾌한 날씨 속에서 기분 좋게 산책한 시간은 딱 여기까지 입니다.

 

육백산 정상부 주변을 벗어나 응봉산 방향으로 임도를 타고 10여분 가다 보면 이르는 삼거리(아래 왼쪽 사진)입니다. 여기서부터 잘 찾아가야 합니다. 길 안내는 이 분 글과 사진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응봉산 정상까지 오르고 다시 강원대 캠퍼스로 유턴하신 분인데 응봉상 정상까지 길안내를 잘 해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삼거리 정면의 숲으로 들어가 숲속 삼거리(아래 오른쪽)가 나오면 우틀해서 응봉산까지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건리 이끼계곡쪽으로 가려면 아래 숲속 삼거리에서 좌틀해야 하거든요.

 

오늘 타는 코스는 아래 보이는 것처럼 도처가 벌목과 조림으로 어지러워 보입니다. 이 코스는 정상부나 능선 주변의 멋진 조망보다는 울창한 숲속을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인데, 이렇게 벌목터와 숲을 바리깡으로 밀어버린듯한 임도를 수시로 만나게 됩니다. 괘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듯 합니다. 같은 코스 산행후기들에 올라온 사진들에 비친 모습들이 계속 달라지고 있거든요. 

 

응봉산으로 가는 길은 벌목지대가 아닌 숲속으로 나 있습니다. 사진에 리본이 걸린 곳으로. 1200m가 넘는 정상인데 동네산 정상부 정도로 비좁고 행색도 초라합니다. 삼척과 울진에 걸쳐 있는 또 다른 응봉산도 정상부 모양은 별로 볼 품이 없지만 관리는 하는데, 이곳은 그런 손길이 안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오른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하산하면서 사단이 났습니다.

 

오르면서 잎이 빼곡한 철쭉길도 두어군데 뚫고 나오고 등산길이 간간히 리본이 걸려 있긴 하지만 길이 좀 분명치 않아 불안하긴 했는데, 수풀이 무성한 한여름이다 보니 하산길 중간 지점부터 헤매기 시작합니다. 미로를 헤매는 생쥐마냥 결국 길을 못찾고 조난의 두려움 속에 하는 수 없이 등산 지점이 있음직한 방향을 잡고 무작정 하산하기로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는데 강원도 고산의 급경사 비탈길숲이 여름에는 어떤 밀도인지,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쌩!고생하면서 경험했습니다. 그대로 숲을 뚫으면서 하산했으면 시간이 더 걸렸을텐데 다행히 하산중 물소리가 들려 물이 흐르는 선을 따라 내려가게 되면서 그나마 고생을 덜한 것 같습니다. 2시간 가까이 고립무원, 고립무의!

 

저의 고난엔 아랑곳없이 하늘과 산은 무심하게 그대로 있습니다. 여기는 주변 산들 능선이 다 이렇게 둥굴둥글합니다. 

 

다시 응봉산 방향으로 틀었던 삼거리로 돌아와 이끼계곡 방향으로 이어갑니다. 숲은 여전히 평탄하고 걷기도 수월한테 끝부분 다시 임도에 내려서기까지 내리막길 관목숲이 너무 무성합니다. 발 아래가 안 보일 정도인데다 벌써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어 미끄럽기까지 합니다. 방향과 관련해 한가지. 이렇게 임도에 당도하면 반드시 우틀입니다. 그래야 아래 하단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위 사진 오른쪽 갈림길에서 임도가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야 이끼계곡 혹은 무건리 방향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일단 숲에 들어서면 방향 만큼은 거의 임도를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걸어야 리본도 보이고 길도 보이고 합니다. 아래 지도를 같이 보시면 더 알기 쉬울까요? 이끼폭포 쪽으로 틀어서 하산하기까지 쭉 능선입니다.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되기 전에 서너번의 오르내림이 있어서 이 코스에서 이 후반부 구간이 전반부보다 더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 출처: https://blog.daum.net/ch257/805

 

지도에는 등로가 너무 분명해 보이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길이 이어지다가도 끊기고 다시 리본으로 이어지고. 이 구간에서는 아래 보이는 무건리 리본이 없었다면 제대로 길을 잃었을 겁니다. 무건리 마을분들이 달아 놓았나요? 아무튼 덕분에 최종 하산 하기 전까지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구간을 걷는 동안 계속 비가 내렸는데 중간에 해가 나오기도 해 숲길을 걷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더군요. 비가 그치나 싶을 정도로 해가 바람과 함께 숲에 들어오면서 잠시 주변 풍경에 몰입이 되는 시간도 있었구요. 그때의 느낌이 동영상으로 전달될 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만 그대로 진행하면서 올바른 하산 지점에서 꺽어 무건리 이끼폭포까지 제대로 도달했으면 오전의 그 고생 정도로 하루가 마무리가 됐을텐데 그냥 바램이었습니다. 위 지도상의 938봉(핏대봉 갈림길, 방지재라고도 불림)이 아무리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동안 쭉 길안내를 해 주었던 무건리 리본도 무슨 이유인지 더 이상 보이질 않고. 나중에라도 다시 오게되면 찾으려고 산행 후기들에 올라온 핏대봉 갈림길 사진을 올립니다. 두 사진 모두 2016년 산행에서 찍은 것들인데, 좀 더 찾아보니 산림청에서 이끼폭포 보호를 위해 길을 없앴다는 말도 보입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다 수풀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한여름이라 길이 덮여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https://blog.daum.net/ch257/805,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nkim2&logNo=220791526236

 

위 938봉 지점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헤맸는지 모릅니다. 결국 못 찾고 지도와 GPS 경로를 보면서 없는 길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오전에 비해 이미 고도가 많이 낮아져 심리적으로는 불안감이 덜 했으나 또 한번의 개!고생입니다. 고도가 낮으니 관목과 수풀이 밀림처럼 자라있어 땅이 보이질 않고 옷은 빗물을 머금은 풀에 흠뻑 젖어 반 사투를 하면서 내려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한 고생이 있을까 싶습니다. 정말 깊게 안도의 한숨을 쉬자니, 이끼 계곡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있습니다. 신비스런 모습보다 그냥 포근해 보입니다. 

 

다행히 하산 지점은 이끼폭포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폭포까지 가기로 합니다.

 

저 안개와 만나는 길 끝에 뭐라도 탈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터벅터벅 4km 가까이를 걸어서 택시를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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