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만 85개를 거느리고 있는 지리산엔 100개의 코스가 있습니다. 높이가 있고 약 1억3천만평의 규모로 인해 능선길도 녹록한 곳이 없습니다. 주능선 종주를 해발 1,100m인 성삼재에서 시작을 해도 28km가 되는 능선 곳곳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넘어야 하니 별로 쉬운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 능선길이지만 상대적으로 둘레길처럼 다소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눈 앞에 유려한 자태로 서 있는 반야봉과 주능선 봉우리들을 감상하면서 23km가 넘는 숲속 오솔길을 걷는 맛을 주는 곳, 코스의 끝무렵인 바래봉에 가까워지면 넒고 길게 펼쳐진 침엽수숲과 쪽빛 하늘과 맞닿은 초지가 목가적이고도 이국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 곳. 성삼재에서 시작, 월평마을(혹은 구인월마을)쪽으로 하산하는 지리산 서북능선입니다. 아마도 지리산 어느 코스보다도 걷는 맛과 지리산이 주는 풍광을 감상하는데 최고의 코스일 것입니다.
트렉일자: 2022년 6월 25일(토)
트렉코스: 성삼재주차장 -> 고리봉 -> 만복대 -> 정령치 -> 세걸산 -> 부운치 -> 바래봉 -> 월평마을(약 23km)
교통: 자차. 하산후 월평마을에서 성삼재까지 택시(40,000원, 40분)
날씨: 기온은 17~23도 사이, 바람은 초속 3~4m. 오전은 내내 흐리고(특히 구례쪽) 오후(남원지역)에는 구름이 다소 낀 맑은 날씨.
전체 코스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 지리산 주능선과는 완전히 방향이 다른 능선으로 마치 주능선을 거대한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두고 보면서 걸어 가는 길입니다. 산행 시작후 약 1시간30분 지점부터 시작되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타고 코스에서 제일 높은 곳인 만복대(1,433m)에 닿게 되면 행정구역상으로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 뒤부터는 바래봉 부근까지 긴 내리막길입니다. 날씨가 맑고 시간을 잘 선택하면 거의 선계와 같은 풍경(이분 후기 참조)과 함께 거닐 수 있는 길입니다.
지리산 여러 코스를 남들만큼 타 봤음에도 성삼재에서 코스의 들머리를 찾아 잠시 두리번 두리번. 주차장 출입구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약 50m 정도 내려가다보면 코스의 들머리가 보입니다. 성삼재까지 차를 타고 와서 노고단까지만 올라 지리산 풍광을 눈에 담고 싶은 사람들과 험난한 주능선 종주를 하려는 산행꾼들은 모두 노고단을 향해 올라가고 저만 홀로 다른 방향입니다.
오늘 날씨운 별로입니다. 그저, 만복대를 지나 남원쪽으로 넘어가면 더 좋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남원에 사시는 분이 구례에서 몇 백mm의 비가 오면 남원에는 보통 몇십mm 정도의 비로 그치고 만답니다. 같은 지리산 자락에 있지만 구례군은 주변에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반야봉(1,732m), 왕시리봉(1,212m), 차일봉(1,356m), 백운산(1,222m)등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반면, 남원은 주변에 덕두산(1,150m), 바래봉(1,186m), 세걸산(1,216m), 고남산(846m), 수정봉(805m)등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산들과 함께 주로 고원 구릉과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탓일까요? 왜 그런지도 궁금하지만 산행시 참고할 만한 정보입니다.
실제로 만복대까지는 조망 시계 제로인 상태였는데 무슨 마술을 부리듯 만복대를 넘어 오니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더군요. 안개를 잔뜩 머금어 무거워진 공기들이 만복대 높이(1,433m)를 못이기고 구례에 발이 묶여 있는 형국입니다.
이 코스는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신작로와 같은 지리산의 다른 코스와 달리 대부분 이렇게 오솔길입니다.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아 수풀도 무성하구요. 그야말로 지리산 숲속을 걷는 느낌이죠.
먼 곳이 안보이니 눈은 가까이 있는 것들을 향합니다. 이 맘때 이 지리산 코스에서 볼 수 있는 꽃들입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접사로 찍힌 꽃들은 형태가 거의 예술입니다.
남원쪽으로 넘어 오니 저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반야봉과 그 뒤 지리산 주능선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구례와 다른 이 날씨는 바래봉을 지나 하산을 하기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그리 보니 오늘 날씨운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닙니다.
세걸산 정상에 오르니 가야 할 길이 저 멀리 바래봉까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거인이 되어 저 능선에 등대고 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 보는 상상을 해 봅니다.
코스 후반부의 시작쯤 되는 부운치에 다다르니 정말 화려하게 개화한 산딸나무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말채나무와 함께 층층나무과에 속한다고 하는데, 정말 수형이 층이 져 보입니다. 꽃은 꼭 어릴 때 접었던 바람개비 같구요.
이 코스에는 이 부운치 말고, 묘봉치, 세동치, 정령치, 팔랑치, 등 치자로 끝나는 고개를 여럿 거치게 되는데, 인터넷 검색결과를 정리해 보면 산을 사이에 두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왕래하던 좁은 고갯길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부운치를 지나 조금만 걷다 보면 다소 눈에 익숙치 않아 좀 이국적으로 보이는 침엽수 군락이 나타납니다. 규모를 보면 숲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공원관리소에서 잎갈나무라고 합니다. 조림한 숲이라고 하는데 바래봉으로 가는 길목과 정상 주변에는 구상나무, 전나무, 주목 등 침엽수가 꽤 넓게 자라고 있습니다.
바래봉 주변은 1990년대 중반까지 양떼 목장이었던 곳입니다. 다분히 하늘의 구름과 함께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양떼가 사라진 후 목축으로 훼손된 곳을 어떻게 복원할 것이냐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끼리 오랜 논의를 거쳤는데 그냥 자연에 맡기는 복원과 더불어 이미 지역 명물이 된 산철쭉은 주기적인 식재를 통해 유지 관리하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진 모양입니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 정상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약 3~4백미터의 평평한 길이 나 있습니다. 왼편엔 구상나무, 오른편엔 전나무 조림지가 있는데, 이 길 끝 조그만 벤치 뒤에 샘물이 하나 있습니다. 물맛 참 좋은 바래봉 샘물입니다. 그먀말로 오아시스입니다.
바래봉에 올라 걸어온 길을 바라봅니다. 길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 명품 길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예보대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하산을 서두릅니다.
하산을 시작하면서 얼마 안돼 시원하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날머리인 월평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 지점에 이르니 다시 해가 납니다. 주변 모든 게 꿈틀거리듯이 생동감이 넘쳐 납니다.
월평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산수국 밭입니다. 보통 몇 그루가 모여 솟아올라온 것만 봤지 이런 군락은 처음 보는데요.
월평마을을 지켜주는 나무인가요? 오래된 서어나무 세그루가 이렇게 나란히 마을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이 코스 날머리엔 월평마을과 구인월마을의 두 마을이 있습니다. 몇 가구 안돼 보이는 월평마을이 먼저 보이고 바로 이어 구인월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구인월마을엔 숙박을 치는 곳도 두어군데 보입니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 감히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은 엄두를 못내지만 먼발치 눈팅만으로는 아쉽거나 안타까울 때 아마도 이 코스를 타면서 여전히 지리산을 걸을 것 같습니다. 더 힘에 부치면 중간 지점인 정령치까지 차로 올라 정령치에서 출발, 바래봉까지 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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