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즐기기 시작하면 지척에 둔 동네산을 운동삼아 혹은 산책삼아 자주 올라가거나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멋진 산을 찾아 전국을 쏘다니게 됩니다. 아주 가깝거나 멀거나. 그 중간은 별로 없죠.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좀 떨어진 산은 잘 안가게 됩니다. 저에게는 관악산이 그런 산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친구들이랑 동료들이랑 몇 번 간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느낌만 남아 있는데, 오늘 종주 덕에 기억도 새로워졌고 다시 타고 싶은 구간도 새겼습니다.

 

트렉일자: 2022년 4월 23일(토)

트렉코스: 사당역(4번 출구) -> 승방길 -> 관음사 -> 연주대 -> 불성사 -> 학바위 능선 -> 삼성산 -> 장군봉 -> 호암산 -> 안양 석수역. 약 15km

교통: 전철

날씨: 트렉 시작할 땐(아침 6시 30분) 12도쯤, 오후에는 25도 전후. 바람 거의 없는 맑은 날씨이나 가시거리는 길지 않은 날.

 

가시거리가 길지 않아 원경은 희미하지만 관악산 구역내 봉우리와 능선은 나름 선명하게 보이는 날씨입니다. 덕분에 오히려 관악산을 더 찬찬히 볼 수 있는 날이 됐습니다. 

 

 

이 종주코스는 많은 등산객들이 타고 후기를 작성해 놓아서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사당역에서 관음사로 올라 관악산 정상을 거쳐 안양의 삼성산과 호암산을 거쳐 석수역으로 빠지는 코스입니다. 코스를 표시해 놓은 선을 봐도 한눈에 여러 산을 관통하는 종주코스입니다. 위성지도에 잡힌 바위지형들이 마치 킹콩의 가슴팍처럼 단단한 근육질처럼 보입니다. 

관악산 위성지도(출처: 구글어스(Google Earth))

 

코스를 따라가는 후기가 아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들 중심으로 후기를 남깁니다.

 

커다란 분지내 서울을 둘러싼 많은 산이 그렇듯 관악산도 암석 지형입니다. 특징이라면, 오랜시간을 풍화에 견디며 버티고 있는 돌들이니 당연히 단단하겠지만 찍을 땐 몰랐는데 사진들을 보니 바위들의 선이 정말 선명합니다.

 

관악산의 상징, 연주대입니다. 연주암으로 내려오는 길의 연주대 전망대,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학바위 근처에서 보이는 모습들입니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홀로 혹은 주변 풍경과 어울려 한 경치를 자아냅니다. 당겨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떻게 저런 절벽 꼭대기에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고 놀라워하고 궁금해 집니다. 관악산의 정상 주변 경관은 거대한 군 통신시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대단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대가 있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 느낌입니다.  정상에서 내려와 바로 하산하기 보다는 정상 주변 여러 지점에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정상에서 연주암으로 내려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틀어 학바위 방향으로 암릉을 타고 가다 돌아보면 정상에서 떨어지는 암릉의 선과 함께 통신시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그림이 들어옵니다.

맨 아래 오른쪽 사진의 바위가 연주대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양지 바른 곳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그렇다치고, 이맘때쯤 봄에는 이런 바위 사면에 진달래가 그득합니다. 보기와는 달리 정말 강인한 녀석입니다.

 

하나는 관악산 정상, 군시설에 거의 붙어 있는 바위군, 다른 하나는 정상 주변 학바위입니다. 이렇게 보니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 자세가 비슷합니다. 

 

아래 바위는 삼성산으로 오르다 보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등로를 따라가는 또 다른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금은 익살스럽고 전반적으로 귀엽게 생겼습니다. 볼 때마다 여러가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코스중에서 제일 재미난 구간입니다. 학바위능선이라고 관악산 정상을 거쳐 삼성산으로 가는 길(안양쪽 방향)에서, 무너미고개로 향하는 본격 하산길인데 암릉구간인데다 이정표 없다시피합니다. 게다가 웬일인지 산꾼들과 산악회 회원들이 즐겨 다는 리본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지형에 대한 감에 의존해 가야 하는 곳이죠. 사진에서 보듯 암릉 선을 거의 그대로 따라 걷는 길이라서, 저절로 집중이 됩니다. 가다보면 자주 크고 작은 암봉이 가로 막고 있고 길이 끊어져 보이는데 이때는 에둘러 가기보다는 그대로 암봉을 타고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길을 찾으면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길이 이어집니다. 봄이고 비교적 맑은 날씨인데도 같은 방향으로 하산하는 사람을 두어명 보았을 뿐,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불성사를 지나 학바위능선 타기 전 한적한 길이 이어집니다.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와 능선이 선경같습니다. 맑은 날 봄꽃이 만개한 때라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삼성산을 지나, 호암산까지 가는 길은 경사도 별로 없는 흙길이 대부분입니다.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학바위능선을 타고 내려, 다시 힘들게 오르는 삼성산을 오르고 넘은 산객에게 마음도 근육도 풀어주는 길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호암산에 다다르면 이렇게 서울 한켠이 들어옵니다. 도시 생활에 찌들어 힘겨웠던 시간들이 잠시 나마 잊혀지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도 해서, 다시금 도시로 돌아가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왜 이곳에서 이렇게 힘들게 살지' 하고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용기도 생기기도 할 겁니다. 이 높이 이 거리에서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우주 밖에서 지구를 대하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생길까 궁금합니다.   

 

석수역으로 향하는 하산길. 바윗길은 여전한데 하산길에 어울리게 한결 여유가 있는 지형입니다. 

 

산이 그리 크지 않지만 절대 쉬운 산은 아닌, 그래서 타는 맛이 있는 산. 여느 산에 비해 정상 주변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산.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아래 사진에 포인트들(연주대 약 500m 남긴 지점)처럼 머물고 싶은 쉼터가 많은 곳. 관악산엔 다채로운 맛과 멋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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