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트렉은 한달 트렉과제중 한 번 있는 편한 둘레길 코스입니다. 올림픽아리바우길이라고 강원도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려고 조성해 놓은 길이죠. 총 130여km에 달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중 7코스에 해당하는 구간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로 빼곡한 숲과 멀리 강릉시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입니다. 날씨도 오랜만에 대박입니다. 그냥 맑은 게 아니라 시계까지 좋은 미세먼지 거의 없는 날씨입니다.

 

코스 주변에는 신라때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보현사와 보현사의 뒷배가 되는 대공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돼 대공산을 같이 묶어서 탔는데, 실제는 대관령 초지가 시작되는 곤신봉까지 갔다 왔습니다. 표식이 없어서 대공산 정상에 올랐음에도 몰라보고 대공산으로 잘 못 본 곤신봉까지 가게 된거죠. ㅎㅎ

 

트렉일자: 2021년 12월 18일(토)

트렉코스: 보현사 입구 아리바우길 7코스 들머리 -> 어명정 -> 술잔바위 -> 대궁산성터 -> 대궁산 정상 -> 곤신봉 -> 대궁산 정상 200m 앞 삼거리 -> 보현사

교통: 자차

날씨: 기온은 트렉 시작시점인 오전 9시경엔 영하 7~8도, 한낮엔 영하 1~2도, 끝날 때쯤 오후 4시는 영하 3~4도.  대궁산 능선에서의 바람은 초속 3~4m 정도였으나 사방이 초지인 곤신봉 정상부는 얼추 초속 10m 상회. 풍속을 체감정도로 이해하려면 '보퍼트 풍력 계급'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수도권이 여기보다 더 춥습니다.

 

 

오늘 트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각기 다른 삼색의 길을 걸었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커다랗고 잘 자란 소나무가 그득한 숲을 맑은 날을 배경으로 편하게 거닌 후, 이어 겨울산을 호젓하게 걷는 대공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마지막으로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바람많고 드넓은 곤신봉 주변의 숨막히는 전경. 전체 14km 정도 되는 길지 않은 길이 참 다채로웠습니다.

 

 

7코스의 시작점은 이 블로그를 보고 찾았으나 여기 있는 지명들이 이미 네비에서 사라져 버려 7코스에서 실제 산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늘 트렉을 시작합니다. 보현사의 일주문같아 보이는 지점을 바라보고 오른 편에 아리바우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약 3km 정도 어명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곳까지 간혹 오르막길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한 산길이자 소나무 숲길입니다. 소나무같은 상록수가 있어 겨울에도 푸른 숲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사시사철 푸르러 소나무잎은 늘 같은 자리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2년에 한번씩 잎을 떨군다네요. 왜 그런지는 이 글에 잘 설명돼 있습니다. 과정은 잘 몰라도 좀 살펴보면 겨울 소나무 밑둥 주변에는 늘 마른 잎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헌 잎들이죠. 즉 우리가 보는 소나무에는 늘 새 잎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때 봐도 생기가 있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는 이렇게 홀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을 때 더욱 돋보입니다.

 

소나무숲 가로 멀리 보이는 도시는 강릉입니다. 날씨가 맑아 동해바다도 보입니다. 

 

 

길을 걷다 눈이 간 표지판입니다. 나무의 지름을 잴때 나무의 가슴높이에서 잰다는데 그게 밑둥에서 1.2m라네요. 처음 알았습니다.

 

어느덧 어명정에 도착합니다. 광화문 복원에 쓰인 금강송이 있던 자리로 이 금강송은 2007년 벌목돼 이렇게 기려지고 있습니다. 정자 안에 베인 금강송의 커다란 그루터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오늘 코스중 평탄한 산길은 어명정까지입니다. 어명정 바로 뒤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술잔바위로 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멧돼지 쉼터'라는 곳입니다. 표지판에 따르면 멧돼지들 놀이터이자 식량창고라는데 참으로 양지바르고 탁 트인 곳에서 노는 친구들이군요. 오늘 트렉구간중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곳입니다.

 

술잔바위까지 왔습니다. 아무리봐도 술잔처럼 안 보여 물컵을 들고 사진을 찍어 봤는데 그래도 술잔처럼 안보이네요. ㅎㅎ 아무튼, 이곳을 거쳐 그대로 진행하면 아리바우길 7코스의 나머지 구간을 걸을 수 있는데, 저는 여기서 유턴을 하여 대공산성과 대공산 쪽으로 올라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코스를 수정하면 걷는 길은 (보현사 일주문 -> 아리바우길 7코스 일부 -> 대공산 -> 보현사 뒤편)으로 바뀝니다(아래 지도 참조).

 

대공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대공산성을 만납니다. 축성연대가 미상인 오래된 산성으로 둘레가 4km나 된다고 하네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대공산성을 지나 30분 정도 더 오르면 아래아 같이 정상 표식 하나 없는 대공산 정상에 이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등산로가 폐쇄돼 있다는 안내문을 보긴 했는데 이곳이 대공산 정상이라는 표식도 없고 안내도 없고 해서 눈을 들어 더 높은 곳에 있는 봉우리를 보고 더 걷게 됩니다. 

 

이 능선의 오른쪽 끝이 대공산 정상이겠거니 하고 열심히 걸어갑니다. ㅎㅎ

 

가는 길에 이렇게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느 산악회에서 발굴한 용천수라고 안내돼 있습니다. 물 맛 시원합니다.

 

자, 이제 능선만 올라서면 대공산 봉우리가 보이겠지 하고 올라서는데 이게 뭡니까! 탁 트인 드넓은 초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 이거 아무래도 대관령 초지가 시작되는 곤신봉 주변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도대체 언제 대공상 정상을 지나친거야'라는 물음이 몰려옵니다. 할 수 없이 '빽'. 근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지금까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바람은 소백산 비로봉 수준으로 세차고 매섭지만 정말 눈과 가슴이 시원합니다. 같은 발견이라도 우연히 발견한 게 큰 기쁨을 주는데 일종의 그런 기분입니다.

 

정상부 주변에서 풍경을 감상하면서 곤신봉이라는 표지판을 통해 여기가 곤신봉이라는 확인합니다. 여기부터 쭉 선자령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다음에 타보기로 하고 오늘은 다시 계획한 곳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되돌아가면서 맹렬히 검색해 보니 대공산 정상이 어디였는지 확인이 됩니다. 안내판도 없었지만 정상같지 않았던 그 곳이 정상이었군요. 하지만 덕분에 시원스레 터진 넓디 넓은 초지를 세찬 겨울바람과 함께 실컷 눈에 담았습니다.

 

이제 오늘 트렉의 종반부입니다. 대공산에서 하산 보현사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역시 하산의 시작점이 전혀 표식이 없습니다. 다만 이전에 다녔던 사람들이 발로 다져 놓은 흔적이 안내 역할을 합니다. 사진에 담아 보았는데 사실 맨눈으로 보는 게 훨씬 더 분명해 보입니다. 이 지점은 대공산 정상에서 약 200m 떨어져 있습니다.

 

 

이 지점이 고도 1천미터 쯤 되니까 400m 지점의 보현사까지는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립니다.  하산하면서 마주친 겨울 숲의 모습입니다. 이 사면에도 역시 시원하게 자란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더불어 산죽도 많이 보입니다. 높이 자란 산죽은 아닌데 자주 보입니다.

 

크게 자란 소나무 수피의 무늬는 참 매력적입니다. 무늬가 큼직하면서도 규칙성이 보이고, 굵고 짙은 선이 무늬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결은 다르지만 굴참나무의 수피 무늬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산이나 참나무가 없는 곳이 없지만 이 산엔 유난히 굴참나무 군락이 많이 보입니다.

 

하산길 내내 경사가 좀 급하긴 하지만 위험하진 않아 어느덧 보현사입니다. 앞엔 강릉시와 동해바다 뒤는 대공산. 하루 중 어느 때나 시상이 떠 오를 것 같습니다.  

 

겨울이라 산사에 사람이 거의 없어 불공을 드리는 동자승 인형의 모습이 유난히 크게 보입니다.

 

도전트렉 덕분에 강원도의 둘레길을 맛보았습니다. 강원도에도 긴 둘레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중 강릉과 가까운 7코스는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라 눈이 내린 겨울에도 멋질 것입니다. 둘레길을 걷다가 호젓한 산길을 걷고 싶다면 대공산으로 틀어서 걷고, 산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걸 느끼고 싶으면 대공산에서 곤신봉까지 욕심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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