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 일.

코로나-19 이전 방하트렉에서 해인사 뒷산을 걷고 해 질 녘에 급하게 대장경을 보고 힘겹게 내려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가야산은 처음이다.

출발 전 터치와 경행을 했다. 2시간 30분 넘게 달려 황산주차장에 도착했다. 청량사까지 갈까 살짝 망설였지만 아침 기운에 걷기가 낫지 싶어 황산 주차장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소리길을 오른편에 두고 왼편 청량사 화살표를 따라 걷기를 2km 정도. 차도를 따라 걷는 길이지만 남산제일봉에 오를 때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수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오늘 가야산은 익숙한 무엇을 의심하게 할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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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를 앞에 두기 전까지 계속 오르막길

 

매표소를 지나 청량사에서 가야산의 절경을 잠시 보니 역시 바위가 높은 산이다. 청량사 주차장에 연해 있는 탐방지원센터에서 숲으로 들어간다. 국립공원인데도 등산객이 거의 안 보인다. 돌 없는 산이 어디 있으랴싶다. 반달곰을 깨우지 말라는 표지판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이러다 반달곰이 지켜보고 있어도 모르고 걷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산 아래 마을을 휘둘러보고 남산제일봉을 요량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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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축소한듯한 바위산이 기다림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 바위를 타고 넘으니 철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순간적으로 다시 내려갈까? 스친다. 아니 왜? 도대체 왜? 그럴까?

일차로 닥친 계단을 네 발로 오르고 나니 숨이 차다. 길게 내쉬며 호흡을 고르고 다시 오르기를 여러차례. 이제 끝일까? 기대하는 순간 저 높이 계단이 날 보고 있다. 사진을 찍을 엄두도 안 난다.. 그래도 생각은 이 떨림을 오래 지속하는 것보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것이 낫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그냥 계단을 오르자.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철계단 일 뿐이다. 보지만 보이는 것을 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자. 다시 나타난 계단 앞에 섰다. 그 계단을 내려온 이들이 일행이 안 보이네요, 일행은 없어요......... 하며,.........하며, 지난다. 바위를 타고 넘어 막상 나타난 철계단은 아래서 저만치 보이던 것만큼 경사가 높지 않았다. 두 발로 서서 난간을 잡고 걸을 만했다.. 눈으로 보는 것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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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일봉

 

남산제일봉에 3~4명의 먼저 오른 이들이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으며 꿀렁대고 있었다. 방하의 리본을 달고 여기온 흔적을 남기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치인주차장 방면 이정표를 따라 쭈욱 내려가는 길 뿐이다. 계단도 있고 편한 길도 있고 역시 너덜 길도 있다. 다 내려오면 돼지골탐방안내센터다. 바로 옆에 단정한 해인사관광호텔이 있고 아직 물드는 중인 은행나무들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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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골탐방안내센터에서 다시 시작

 

길을 따라 쭈욱 내려가면 소리길 시작이란다. 첫 번째 밥집 앞이다. 이제 막 12시를 지나기 직전이다. 대장경밥집이라니 갑자기 궁금하다.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텅 빈 식당 사장님은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상을 보여주신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비빔밥과 곁들인 찬이 정갈하고 깨끗한 맛이다. 비빔고추장을 넣지 않고 곁들인 찬을 모두 비웠다. 지난 주 설악산 소공원에서 먹은 산채비빔밥과는 같은 값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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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밥집

 

치인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소리길 이정표를 따라 걷다 해인사 입구에서 잠깐 망설이다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海印)삼매(三昧)를 눈으로 읽었다. 소리길의 시작점 해인사에서 이 소리의 시작 지점일 것 같은 지점에 가서 소리를 기록했다. 기록이라 하지만 이미 사라진 소리를 붙잡는 것일 뿐일 텐데. 소리길 내내 이 소리?는 색깔과 모양과 크기를 달리하며 나타나고 사라진다.

 

 

해인사에서 소리가 시작되는 지점

 

소리가 우렁차고 색도 깊다

 

길의 모습도 무장애 데크길로 시작하다, 돌길의 숲으로 들었다 다시 다리를 건너 물길을 따라 걷다를 7km가량 계속한다. 오늘 트렉 출발 지점인 황산 주차창에서1.7km를 더 걸어서 대장경테마파크까지 이어진다. 1.7km를 남겨 놓은 채 황산주차장에서 트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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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0.1km지점 소리길 출발점 바로 옆 황산주차장으로 돌아옴.

해인사 일주문에서 소리길은 시작된다 표시되어 있지만 온 김에 해인사도 둘러보았다. 가을을 맞아 아직 피지 않은 국화꽃이 질서 있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전에 보지 못했던 시대의 산물 "디지털 불전함"이 대웅전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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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불전함과 2021년 해인사 풍경

 

코로나-19 시대 스님들은 해인사 입구에서 이런 표식을 팔둑에 붙여주고 계셨다.

입장 확인 표식

소리길을 따라 걷다 길상암에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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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김에 여기저기 들러 살피다 보니 예상보다 좀 많이 길어졌다.

 

거기 사진 찍는 선생님, 막걸리 한 잔 하고 안가실랍니꺼?” 이미 술이 오른 식당 사장님의 호객을 뒤로하고 이미 사라진 소리를 잊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황산주차장 한편에서 팔단금으로 오늘 흔들린 등줄기를 바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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