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3일 토요일 설악산 내외종주 코스로 트렉을 진행했다. 속초시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하여 비선대~금강굴~마등령삼거리~오세암~백담사에서 마무리했다.

지난 해 가을 도전트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생애 처음으로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트렉을 한 곳이기도 한 비선대~금강굴 구간을 밝은 시간에 걸어보고 싶었다. 오래 전 어떤 아이들과 함께 보며 눈물 훔쳤던 영화 오세암의 그 공간에도 가서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다.

 

경행을 하면서 어둠이 가시기를 기다리다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는 5시경 소공원에서 출발했다. 주차장에는 이미 산행 준비를 마친 한무리가 출발하고 있었다. 저만치 앞서가는 그들 뒤에서 나의 속도를 유지하며 걷기 시작했는데, 비선대 다리를 지나 그들은 왼편으로 나는 오른편 금강굴을 향해 걸었다. 지난 해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정신없이 걷기만 했던 기억이 떠올라, 발을 내딛는 돌 하나하나, 무게중심을 이동할 때마다 꼭꼭 밟았다.

비선대

 

햇살이 산등성이를 넘어 비추기 시작할 무렵 금강굴 이정표 앞에 도착했다. 지난 해에는 어둠 속에서 스님들 수행 공간이니 조용히 지나가라는 안내문을 보고 지나쳤던 것 같은데, 날 밝은 오늘은 200m 거리 안내표지가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주 큰 돌덩어리산 가운데 즈음 굴이 있어 보이고 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금강굴에서 보이는 천불상과 천불동 계곡

방울방울 떨어지게 작은 나무가지를 꼽을 줄 안 그 마음은 ?

사실 지난 해에는 금강굴에 가보는 것이 공포스러워 피하고 싶었는데, 마침 수행중이므로 그냥 지나가라는 안내문이 내심 다행스럽기도 했었다. 오늘은 다르다. 약간 겁도 나지만 가보고 싶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긴 철계단을 오르고 다시 바위길을 돌아 오르기 전,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간격이 약간 높기도 하고 떨리는 마음을 잡을 겸 네 발로 기었다. 걸을 만큼 안정된 계단에서 일어서면서 호흡과 수리를 다시 잡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바로 금강굴이 모습을 보여준다.

스님은 출타 중이었지만, 바위 사이에서 흐르는 물은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촛불켜진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물을 세 모금 받아 마시고 앉았다. 천불상과 계곡을 잠시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았다. 원효대사는 어떻게 그 시대에 이곳 자연굴을 발견하고 올랐을까? 어떤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무엇이 그리 절실했을까?

계단 하나에 수리 하나를 꼭꼭 밟으며 내려오니 조심할 수 있었고, 좀 떨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등령삼거리 가는 길에 보이는 바위와 길들이 반갑다. 그리 쉽지는 않지만 오를만했다. 발빠른 부부가 앞서가버려도 괜찮았다. 앞서 와서 쉬던 부부를 지나쳐 가기도 했다. 바위길과 계단을 여러번 넘어서자 어느 순간 사람소리가 들리더니 뜻밖에 마등령삼거리가 나타났다.

마등령 오르며 다시 바라보이는 긍강굴이 있는 바위산

요기를 하며 쉬는 이도 있고 신발끈을 다시 묶고 있는 이도 있다. 이곳에 도착하는 모든 이들이 왼쪽 공룡능선 방향으로 간다. 백담사 방향으로 걷다 올라오는 한 무리 사람들이 있어 반가웠다.

1.5km 정도 걸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공양간 앞에 내놓은 떡을 먹으라며 권한다. 그래도 부처님께 절 먼저 올리고 이곳저곳 살폈다. 오래 전 영화의 배경이야기는 동자전에 담겨 있었고, 노산 이은상이 노스님과 만경대에 오른 이야기와 오세암에 봉안된 팔만대장경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다섯 살 천재로 오세암에 왔다는 김시습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특별히 선원이 있어 보살들이 여럿 점심 공양을 기다리며 젊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님은 공양하고 가라고 떡을 싸가도 된다고 하시며 이것저것 돌아보고 묻는 말에 친절하고 편하게 대답해주셨다. 마치 영화 속 동자승이 청년이 되었구나 싶은......

이은상이 노스님과 올랐다는 만경대는 눈으로만 보고 오세암 마당에서 한참을 쉬었다.

금빛으로 장식한 법종각 아래로 백담사 방향 안내표지가 있다.

백담사가는길

오세암을 나서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숲을 뚫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시작되었지만 오세암을 향해 오르는 이들이 계속 이어졌다.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다는 백담사로 향하는 길 내내 한용운과 관련된 안내글이 여럿 있었다. 한용운이 깨달은 곳이라는 바위도 있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영시암

영시암에 도착하니 점심식사를 하는 이들이 많고 백담사에서 올라오는 이들도 끊이지 않았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계곡이 시작되었다. 돌 색이 훤히 비추이는 맑은 계곡은 내내 이어지고 물색이 옥빛으로 달라지는 구간도 있었다. 백담사에 이르는 3.5km 구간 내내 짐을 지고 오세암에 가는 나이 든 이들(할머니)이 많았다. 계곡물에 발 담그러 가는 가족들도 있고, 계곡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 구간에는 오르는 이들이 참 많았다.

백담계곡

작은 새 한 마리가 돌에 앉아 처다봄.

설악산국립공원백담사탐방지원센터

백담사에 도착하여 백담분소(6.0km)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탑승객들 속에 자리잡으며 트렉을 마무리했다.

백담분소까지 6.0km  좁은 도로를 20여분 마을버스(30명 정원, 2500원)로 이동하면서,  백담사를 향해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세 번이나  교차할 만큼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이 백담사 또는 오세암이라는 실감을 함.

마을버스타는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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