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렉일자: 2022년 7월 2일(토)
트렉코스: 삼척시 가곡면 덕풍산장 -> 덕풍계곡 -> 응봉산 정상 -> 울진 덕구온천
날씨: 바람 거의 없는 땡볕이 그득한 전형적인 여름날씨. 기온은 아침나절 22~23도에서 낮에는 30도 정도
교통: 자차. 하산을 엉뚱하게 경북 울진쪽으로 하는 바람에 울진 덕구온천에서 삼척 덕풍마을까지 버스와 택시로 이동
제목을 흔히들 부르는 덕풍계곡 대신에 덕풍캐년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렇게 불러야 할 듯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바라고 그렇게 바뀌기를 바랍니다. 안그러면 계곡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려 이곳 지형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과 아름다움이 묻힐 것이라서. 음악은 좀 그런데 어느 분이 드론으로 이곳 지형을 잡은 것이 있습니다. 이 영상입니다.
강물로 바닥이 깊고 좁게 파이고 양안이 절벽인 지형이 협곡일텐데 그랜드캐년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면서 그랜드캐년에는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양안이 모두 절벽이라 어느 다녀온 이가 말했듯 일단 들어가면 끝까지 가던가 아니면 유턴할 수는 있겠지만 양옆으로 빠질 수는 없는 지형입니다. 우리나라 산에도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가는 중간에 탈출로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설악산 공룡능선. 계곡에도 그런 곳이 있네요.
전체 코스중 제 2용소에서 시작 응봉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는 제 2구간이 다분히 캐년이라 불릴 만한 지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곳이 현재는 조난사고 예방과 산림자원보호를 이유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삼척시에서 이런 전면통제를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중인 것 같은데 경험해 보고 느낀 점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2구간의 계곡 구간에 지금 정도로 설치돼 있는 안전시설물을 보수만 하는 정도로 유지해 준다면 자연스레 퉁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형의 특성상 계곡물 수량이 적은 때라도 1,2번은 허리 높이까지 차 있는 물속을 걸어서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여름 한철, 그것도 장마나 태풍이 없는 때에만 트레킹이 가능합니다. 건널 때마다 젖은 옷을 갈아 입을 수는 없고 그냥 젖은 채로 입고 말려야 하는데 땡볕의 여름 아니면 어려울 겁니다.
둘째, 제 2용소까지는 상시 개방인데 편도 2Km 남짓으로 너무 짧은 데다가 지형 또한 계곡물과 소로 이루어진 여타 깊은 산 계곡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아서 과연 고 정도의 경험을 위해 수도권에서 4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사람들이 올까 싶습니다. 주변에 관광차 놀러 왔다가 오는 사람 말고는. 다시 말해 이렇게만 개방해서는 캐년다운 지형으로 마케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뭔가 계절과 날씨에 따른 탐방 제한, 거기에 더해 인원을 제한하는 방식의 제한적 탐방제도를 운영하면 어떨까 합니다. 산림자원도 보호하고 이곳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게 삼척시에서 묘안을 짜내기를 바랍니다.
입구에 있는 마을, 덕평마을에 새로 지은 것 같은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면 이내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계곡쪽을 가리키는 방향과 막바로 응봉산 정상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용소라는 말은 전국의 많은 계곡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냥 계곡물 웅덩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용이 사는 깊은 물'이라고 표현하는게 이야기도 연상되고 훨씬 멋스럽습니다. 계곡 방향으로 가면 제 3용소까지 대략 7km가 좀 넘고, 나머지 3km는 응봉산 정상까지 가는 길인데 두 구간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산은 계곡이 끝나는 지점부터 능선까지 경사가 50도 정도되는 사면을 고도 500m가량을 치고 올라야 하고, 능선에 올라도 정말 거리 측량이 맞나 싶게 정상까지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계곡은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듯 물이 차지 않았음에도 양쪽 모두 길없는 길입니다. 오른쪽 데크길이 보이는데 이런 것이 설치가 안 돼 있던 시절에는 그냥 물속을 걸어야 했을 겁니다. 만약 데크길이 물에 잠기는 날씨면 뭐 갈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이런 데크길도 예산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이지 본격적으로 캐년지형이 시작되는 두번째 소를 지나면서부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설치돼 있고 나머지는 로프와 디딤쇠로 가름돼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비가 오면 이곳은 계곡 전체가 길고 커다란 어항이 된다고. 지형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서울 경기지방은 오늘 트렉 전 1주일 일기는 완전 장마였는데 반해 이곳은 비가 거의 없었다는군요. 오늘 날씨 또한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씨. 이곳을 찾기에는 더 이상 좋은 날씨가 없습니다. 수량도 거의 최저고 바위는 바짝 말라있어 신발과의 마찰력은 최고. 덕분에 아쿠아 신발을 신고 물속을 걷는 것은 한번 뿐. 젖은 옷과 몸도 좀 걷다보니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오래 전 퇴계 선생이 청량산에 들어가면서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는 싯구를 남겼다는데 어느 지점인가 지형이 확 달라지면서 딱 그 싯구가 떠올랐습니다.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는 나와 내 주변이 분리돼 경치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내 내가 그 그림에 녹아 들어가는 느낌으로 바뀝니다.
계곡 상류에 가까워지면서 캐년은 다시 계곡으로, 비로소 얌전한 지형이 나타나지만 산은 여전히 깍아 지릅니다.
제 3용소에서 숨을 한 번 고르고, 산을 오릅니다.
기슭에서 조금 올라서니 온통 숯검댕입니다. 얼마 전에 덮친 산불의 피해지역이었습니다. 단일 지역 산불로는 진화까지 최장기간(9일) 걸린 엄청난 재난으로 서울시의 1/3면적에 해당하는 산림이 타 버렸습니다. 조선시대부터 가꾸어 온 금강소나무 최대군락지, 국내 최대 산림자원보호구역, 산양등 멸종위기동물 서식지 등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응봉산의 삼척지역 사면 뿐만 아니라 오늘 무심코 하산길로 가게 된 경북 울진지역 사면까지 수백년의 시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땅바닥은 몇개월새 새생명이 자라고 있지만 눈을 조금 들면 거의 흑백사진입니다.
꼭대기에 정상석만 무심하게 서 있습니다. 鷹은 매를 뜻한다고 합니다. 언뜻 먼 곳을 응시하는 매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 곳 응봉산 정상에는 하산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경북 울진군에서 세운 것만 있습니다(아래 왼쪽 사진 참조). 게다가 이 곳이 삼척시와 울진군에 걸쳐 있는 산이라는 걸 잊어버리면 하산객들을 따라 이정표가 가리키는 경북 울진으로 하산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정상에서 다시 원래 출발점인 덕풍마을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면 이 글을 참조하시고, 산을 넘어 응봉산의 다른 쪽을 걷겠다 하시면 표지판 따라 가시면 됩니다. 대신 삼척시 덕풍마을까지 가려면 돈도 들고 시간이 더 듭니다. 교통편은 여러 옵션중에 덕구계곡에서 1시간에 한 번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울진의 부구버스터미널까지 가서(약 15분 소요) 택시를 타는 방법이 비교적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가 탄 택시의 기사분이 일러주더군요.
응봉산은 어느 사면이나 모두 가파릅니다. 위 오른쪽 사진은 울진쪽으로 하산하면서 고도 약 400m 지점에서 찍은 것인데 여전히 저렇습니다.
울진쪽으로 하산하면 만나게 되는 덕구계곡입니다. 화강편마암으로 만들어진 바위의 생김새와 지형이 특색이 있는 곳입니다. 이쪽은 덕구계곡보다는 덕구온천으로 더 알려진 곳 같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용출천, 즉 지상으로 온천수가 솟구치는 곳이랍니다. 하루 300톤씩 올라온다는데 그 뜨거운 물이 다 어떻게 데워져 어디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정상에서 주변 지리를 다시금 새겼으면 이정표에 현혹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트렉입니다. 그런데, 이든 저든 덕풍캐년에 대한 기억은 정말 강렬하게 남습니다. 부디 삼척시에서 계곡 전체를 개방한다고 하더라도 시설물을 과하게 설치하지 않기를 바라고, 해외의 사례를 살펴서 개방을 하더라도 그야말로 희소성이 지켜지는 천혜의 지원으로 유지되도록 개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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