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남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왼발 엄지발가락 주변에서 냉기가 나와서 여름에도 양말을 신지만 발이 시렸다.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주왕산 자락에 살고 있는 분에게 침을 맞으러 6개월 정도 매주 토요일마다 다녔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듯이 4시간을 달려가 2~3개의 침을 꽂고 2~3시간 누워 있다 침을 뽑고 다시 4시간을 운전해 오면 하루가 저물곤 했다. 그땐 8888 고속도로가 아직 1차선이었다. 그렇게 오가면서 주왕산 이정표를 매주 보고 다닌 것이 주왕산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런 인연으로 주왕산을 처음 알게 되어서인지 그땐 산을 오르거나, 걷는 것은 1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지난 109일에 도전 코스로 다녀왔다.

두 개의 코스를 하나로 연결한 도전트렉

 

주말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 소나기 소식이 있어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먼저 다녀온 이의 후기에서는 아주 쉽게 다녀온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내겐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에. 언제나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후기에는 생략된 부분이 많고, 특히 후기를 쓰시는 분들의 공통된 특징 같은 것이 있는 데......단정지을 수 없어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3시간이 넘는 이동거리를 감안해 전날 청송에 도착해 상의 주차장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두부전문 식당 사장님 말씀이 주왕산은 산이 순해서, 비가 와도 우산 받고 많이들 오른다고 하시니, 믿어 보기로 한다. 그래도 후기를 남긴 분의 속도가 있어서 아침 일찍 나설 요량을 잡았다.

어제 저녁 때, 겨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오늘은 새벽 내내 내리고 있다. 비옷을 입고 출발을 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등산객들이 있는 것을 보니, 험한 산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아직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은 조용한 상가 지구를 지나 대전사 바로 앞에서 매표를 하고 입장을 하니, 눈앞에 바로 대웅전과 멋진 바위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다. 빗속에 안개가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바위 봉우리들이 주왕산의 내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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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시간 한적한 가을비가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대전사 마당에서 왼편으로 나가 등산로 표식을 따라가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편 주봉 마루길로 접어들면 오르막이긴 하지만 순한 길이 이어지고 전망대가 두어 곳 설치되어 있다. 날이 흐리기는 하지만 안개 사이사이로 굽이굽이 산이 있고 먼 동네들이 보이기도 한다. 첫 번째 전망대에는 친절하게도 등산배낭 걸이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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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배낭걸이대

 

첫 번째 갈림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편 폭포 방향으로 가길래 나홀로인가 했는데, 조금 오르다 보니 두런두런 이야깃소리가 들린다. 많이 반가운 소리다. 아직 20대 초반일 듯 보이는 이들 둘이 쉼없이 재잘거리며 앞서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뒤로 물러 난다. 그들은 지금 시간에(아침 7시가 좀 지난 시간)이제 1/4 지점이니 걱정 없다며 전망대에서 수다가 길어진다. 속으로 그렇지않은 나의 오늘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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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에 오르기까지

 

주봉 정상 직전 계단에서 아저씨 일행이 등장하고 주봉 정상석에서 단체 사진 남기는 것에 손가락 하나 얹어드리고 잠시 휴식. 아침에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정상이라 바람이 불고 기온이 차서 비옷을 입은 채로 가메봉을 향해 출발한다. 여기서도 아저씨 일행은 막걸리와 간식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고, 나는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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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약간 내리막을 걷다 오르다를 반복하며 능선길을 걷는 이 구간은 길이 정말정말 순하다. 이 구간에서 가메봉까지 속도를 내도 무리가 없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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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길들

가메봉삼거리에서 가메봉 정상까지 올라 흐린 산과 보이지 않는 마을을 상상하며 점심 요기를 하고 다시 가메봉 삼거리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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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로 시야는 하얗다

 

일단 후리메기삼거리를 통과하는 길은 급한 내리막이 한참 이어지다 나무계단을 마지막으로 계곡을 타고 내려간다. 가메봉 정상에서부터 몇 발 앞선 부부를 따라 쭈욱 가면 되겠거니 했지만, 계곡길에 접어들어 길이 안보인다며 능선으로 오르기를 권한다. 어쩌나 잠시 망설이다 권유대로 가파른 능산을 타고 오르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다른 길이 날 수 없는 바위 지형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의견을 나누어 내려가 길을 찾아보는 것으로 결론. 스틱도 있고 등산화도 신은 내가 먼저 내려가 큰 바위를 타고 넘어 내려가니 다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부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이제 다시 아저씨가 앞장서서 길을 찾아 후리메기 삼거리 즈음 도착하니, 인적없던 계곡길과 다르게 주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후리메기 입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들썩이는 분위기다. 이제 제대로 용연폭포로 가는 방향을 잡았구나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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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메기삼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있음

후리메기입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용연폭포로 향하는 발길이 복잡했다. 지나는 길에 눈으로만 보고 이정표를 살펴 금은광이 삼거리를 향해 방향을 잡고 보니 예쁜 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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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로운 코스인 장군봉을 향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위험지역이므로 신속하게 지나가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띈다.. 국립공원 입장 시간제한 표지판도 있다. 1시쯤이라 시간은 늦지 않았다. 계곡을 따라 돌길이 나 있고 용연폭포 근처와 다르게 인적이 없다. 그쳤던 비가 후리메기삼거리를 지나며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발길이 빨라지니 마음이 스산하다.

이어진 줄을 따라 바위길을 오른다, 얼마가지 않은 지점에서 장군봉을 넘어 가려다가, 비가 오고 길이 멀어 다시 되짚어 내려온다는 분들께서 혼자 가지 말라며 말리신다. 살짝 흔들린다. 그래도 가봐야지. 그런데 오르막이 힘들다. 주봉에서 가메봉(822m)을 올랐다 완전히 내려왔다가 다시 700m 이상까지 오르려니 쉽지 않다. 아마 도전트렉이 아니었다면 두 개의 코스로 나눠서 트렉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수리를 외며 걷다, 다시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 너무 반갑다. 몇이 내려오고 있다. ! 기석이 같은데? 그렇게 방하가족을 보니 참 좋았다. 뒤에 오시던 분이 어, 혼자 가네! 하신다.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괜찮다는 말씀에 안도하며. 다시 도전을 이어간다. 도울 것 없어 주신다는 천금도 한 알 받았다.

가 봐야지. 마음 한 편에 비가 내려 어둠이 빨리 내리면 어쩌나 걱정이 계속이다. 걷다보니 뒤따라 오는 부부를 만나고, 인사를 건네다 함께 장군봉 넘어가자고 서로 북돋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직 생생한 부부 뒤를 따르다 보니 그래도 든든하다. 누군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 순간이다.

이정표의 거리보다 좀 짧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장군봉을 900m900m 남겨놓은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오르막 이후 능선을 휘돌아 한참을 걷다 내리막 구간 직전에 쉬려고 하는 상황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다행이도 앞서던 부부가 먼저 쉬고 있던 상황이라 도움을 받았다. 단 것을 마악 먹으라 하고 다리를 잡아당겨 쥐를 풀어 주기도 하고 한동안 쉬다 걷다를 반복하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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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군봉

 

장군봉에 도착하고 다시 한번 단 것을 먹여주고 쥐를 풀어 주고 부부는 내려가고 나는 또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쉬다 걷다를, 쥐나고 풀고를 거듭하며 예상보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스스로 걸어 대전사에 도착했다. 어둠이 살짝 내리기 시작한 시간, 집으로 돌아갈 힘을 얻기 위해, 살기 위해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주문하니, 산나물전이 함께 나왔다. 쌉싸름한 맛이 입에 잘 넘어갔다. 된장찌개의 짭짤함도 좋았다. 밥은 넘어가지 않아 남겼다. 계산하면서 맛이 없어서 남긴 것이 아니라 제가 오늘 너무 힘들게 걸어 입맛이 짧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사장님께 덧붙였다.

 

왼편 산나물전과 된장찌개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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