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방하 도전트렉중에서 제일 길고 힘들었던 트렉입니다. 등산앱에 따라 길이가 좀 달라질 수 있지만 대체로 25~26km 정도 되는 기~인 코스입니다. 특벽히 힘들다고 한 것은 체력이 고갈될 쯤 막판 가야산까지 점점 높아지는 봉우리와 깊은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정말 마의 구간을 지나야 가야산 정상에 이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코스를 우리나라 4대 종주코스중 하나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검색해도 산행기가 별로 없고 이날 저희 기나긴 트렉중 가야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만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발길이 잦은 코스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거기에는 교통편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열차 등으로 편하게 닿는 경북 김천역에서 코스의 시작점인 수도암까지 차로 1시간 거리이고, 종주가 끝나는 경북 성주에서 다시 김천으로 되돌아 오려면 차로 1시간 거리입니다. 대중교통? 택시 말고는... 12시간 가량 걸리는 산행 시간과 10월의 일몰 시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수도암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분당에서 김천까지 차로 2시간 반 가량 걸리니 당일치기 산행시 늦어도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하죠.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날 자차로 저녁에 출발, 다음날 새벽에 시작하는 여정으로 잡았습니다.
트렉일자: 2021년 10월 16일(토)
트렉코스: 경북 김천 수도암 주차장 ~ 수도산 ~ 단지봉 ~ 두리봉 ~ 가야산 ~ 백운동탐방소. 아래 지도 참조
트렉시간: 새벽 5시 ~ 오후 5시
날씨: 15일 늦은 저녁부터 16일 늦은 오전까지 비(예보대로 비가 제법 오는 날씨. 산행중엔 주로 부슬비). 기온도 1천미터 ~ 1천3백미터 능선코스 내내 체감온도 3~5도 전후, 바람은 5~6m/s으로 예보됐으나 체감온도를 2~3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기
날씨만 보면 일반적인 산행도, 특히 이런 코스는 안 가죠. 그런데 방하 도전트렉이라 하는 수 없이. ㅎㅎ 아래 지도를 보면 전체적인 코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위도는 살짝 낮아지는 코스입니다. 오른쪽 대동여지도(출처: 최선웅/민병준 공저 해설 대동여지도)를 보면 지도 내 선이 더 단순해서 방향이 더 분명해 보입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능선의 규모의 차이를 굵기를 달리하여 표시한다는데, 백두대간이 제일 굵고 정맥 지맥순으로 얇아진다고 하네요. 이 능선이 대간길은 아니지만 굵기로 보아 이 코스는 정맥의 규모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대동여지도에 산이나 봉우리는 톱니바퀴처럼 뽀족하게 표시되는데, 전체 코스중 가야산으로 가까이 갈수록 봉우리가 많아 보입니다. 실제로 이 코스는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는데 더 힘들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코스는 아니지만 일부 구간을 제하곤 능선 전반적으로 길이 닦여서 잘 보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만큼 산꾼들이 찾는 코스란 애기죠. 그래도 이번에 길을 찾아 두번 헤맸습니다. 한 번은 수도산 정상에서 단지봉 가는 길을 못찾아 20분, 다른 한 번은 단지봉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길이 흐릿해져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다고 되돌아 오느라 40분을 헤맸죠. 첫번째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는 것을 두번째에서는 종주같은 긴 산행을 할 때는 기본적인 방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어떤 여정이든 들머리를 찾아야 시작할 수 있는데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중 가운데는 수도암 주차장에서 보이는 수도암 출입문입니다. 돌계단을 좀 올라야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 출입문을 지나고 바로 오른쪽으로 보면 조그만 돌다리가 보입니다(어느 분 블로그에서(출처는 사진 설명에)). 이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서 약 2~30m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수도산 입구 표지판(제일 오른쪽 사진)이 보입니다. 어두워 이 표지판을 지나치면 다시 조그만 돌다리를 건너게 되니 수도산 입구 표지판은 두 돌다리 사이가 되네요.
수도산 정상까지 2km, 1시간 정도 거리입니다. 어두워도 돌계단, 나무계단이 대부분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1시간만에 수도산 정상에 다다르긴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정상을 70m 앞두고 보이는 이정표의 '단지봉'을 못보고 수도산만 보고 갔다는 것. 그러는 바람에 수도산을 넘어 거창군쪽으로 넘어서 가랫재, 양각산 방향으로 가다가 되돌아 오고 정상 주변에서 잠시 멘붕을 겪었죠. 다행히 이전 산행기 블로그 내용이 기억나 '수도산 삼거리'라는 표현이 생각이 났습니다. 오를때 어둡고 비도 오고 먼 길을 앞두고 마음은 좀 급하니 위 맨 왼쪽 사진의 이정표에서 수도산만이 보였던 겁니다. 이 코스 종주를 계획하시는 분들은 꼭 기억하시길. 수도산 정상을 찍고 다시 수도암 방향으로 70m 내려와야 단지봉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어느덧 저 멀리 수도산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합니다. 길도 밝아졌구요.
코스에 이정표가 많지 않고 귀해 이번엔 모든 이정표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제가 두번째로 헤매다가 정말 제일 반갑게 만난 이정표는 따로 뺍니다. 수도산과 단지봉 중간쯤에 갑자기 길도 흐릿해지고 믿었던 리본도 안 보이고 하면서 하마터면 가야산 방향인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갈 뻔 했습니다. 긴 코스이니 가끔 리본이 안 달린 곳도 있으려니 하고 감으로 길을 찾는데 하필이면 잘 못 잡은 곳이 쭉 길이 나 있더군요. 길처럼 보인 것을 탓할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지도를 충분히 숙지했더라면 그렇게 잘못된 길로 길게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를 구해 준 건 '산넘어산'이라는 등산앱의 경로추적 기능입니다. 등산앱은 쓰는 사람마다 좀 달라서 사용 방법은 조금씩 다를 겁니다. 한 마디로 제가 가는 길을 GPS로 쭉 기록하면서 경로를 표시해 주는 기능입니다. 사실 길을 잘 모르는 산에서 헤매기 시작하면 방향도 중요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어디로 걸어 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잘 못 잡았을때 원래 위치로 되돌아 갈 수 있죠. 근데, 이것이 큰 산에서는 주변이 다 비슷비슷해 금방 오던 길도 거슬러 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헤맬 때는요. 근데 GPS의 이 기능만 있으면 적어도 잘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두번째로 저를 구해준 건 리본입니다. 코스를 완주해 보니 이 코스에는 가야산을 앞둔 마지막 구간 일부를 빼곤 거의 모든 구간에 먼저 완주하신 분들이 달아 놓은 리본이 수시로 보입니다. 대략 100~150m마다 리본이 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이 좀 헷갈린다 싶으면 여지 없이 리본이 길잡이가 돼 주었습니다. 이 코스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국립공원 내의 종주코스가 아니어서 위 사진의 이정표 말고는 행정 기관에서 별도로 정비 관리하는 흔적이 안보입니다. 다른 코스에 비해 리본의 역할이 정말 절대적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이정표를 만나는 건 산행에서나 인생에서나 중요한 문제이면서 다소 행운도 따라야 합니다.
무사히 단지봉에 도착했습니다. 단지봉 정상은 족구장 2개는 족히 만들 만한 평평한 지형입니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흐린 날엔 멀리 있는 마루금보다는 구름의 조화가 더 멋지게 보입니다. 단지봉 정상석 뒤 멀리 가야산 정상이 보입니다.
아직도 가야산까지 가려면 첩첩산중이네요.
하지만 이제 걸어온 길도 꽤 됩니다. 왼쪽에 단지봉 오른쪽 끝이 수도산.
철이 바뀌면서 숲의 모습도 변해 갑니다. 왼쪽의 생강나무는 이제 노란 단풍이 된 후 잎이 떨어질 것이고, 오른쪽 철쭉은 오래 전에 잎이 떨어져 가지만 남았으나 겨울에 빼곡한 가지 위에 서리와 눈이 내리면 다시 꽃을 피울 겁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아래 잣나무 숲과 전나무 숲은 존재감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자작나무(위 사진 제일 왼쪽)는 사실 뽀얀 빛깔과 특이한 나무껍질로 인해 언제 봐도 눈길을 끄는데 겨울에도 침엽수에 그 존재감이 뒤지질 않습니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단지봉 가기전 이정표가 가리키는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군락을 만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사실 존재감으로 따지자면 이번 종주 코스에서는 단연코 조릿대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산행과 트렉중에서 조릿대 밭을 가장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사실 만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헤치고 가야 할 정도로 사람 키 높이 조릿대밭, 키를 넘는 조릿대밭을 수시로 관통해야 했습니다. 특히 단지봉을 지나서 가야산을 오를 때까지 조릿대밭이나 군락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조릿대 군락은 밀도가 너무 높아 마른 날씨에도 힘든데 젖은 날씨라 더 힘들더군요. 너무 빼곡해 조심하는데도 두어 번 넘어지기도 했고 한 번 빠져 나오면 말랐던 옷이 다시 젖곤 했습니다.
조릿대밭을 이렇게 헤치고 나오면 아래 위 옷이 모두 이렇게 젖습니다.
여기서 저의 최애 등산장비를 소개해야겠습니다. 입는 것이라 옷이긴 한테 장비에 분류하는 것이 낳을 것 같아요. 덧바지라고 하는데, 등산바지 위에 필요에 따라 신발을 벗지 않은 상테에서 착용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서 방수, 방풍, 보온 효과까지 전천후입니다. 방수 방풍은 소재 덕에 보온은 한 겹을 더 입으니 공기층 덕에 생기는 효과입니다. 산행 중에 날씨가 궂을 가능성이 있거나 추운 날엔 늘 제 배낭안에 필템으로 들어갑니다. 이번 트렉에도 위와 같이 수시로 젖은 조릿대밭을 통과할 때나 아래와 같이 바람이 많은 길에서 이 장비 덕택에 몸을 마르게 유지하고 체온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아래는 저의 덧바지 사진입니다. 브랜드는 알아서 선택하실테고, 사실 때 소재 꼭 확인하시고 탈착이 편하고 내구성이 좋은지 살펴보고 사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제 것은 다리 양 옆이 발 부분에서 허리까지 지퍼로 완전히 트이고 닫힙니다. 그러니 입고 벗을때 등산화를 벗을 필요가 없습니다. 장갑과 등산화도 이런 확실한 게 있었으면 하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드뎌 가야산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앞서 코스 소개할 때 두리봉 지나서부터 가야산까지의 구간을 이 긴 코스의 마의 구간이라고 했는데 오른쪽 고도 그래프를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아래 지점까지 오면서 이미 굴곡이 심한 고개와 봉을 넘고 거리 20km를 넘긴 상태인데 봉(가야산)이 하나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정말 넘사벽처럼 보이고 무겁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가야산을 올랐습니다.
가야산 상왕봉입니다.
기쁨에 차 몇 장 조망도 담아보고.
그런데 너무 춥습니다. 1,500m가 넘으니 기온도 더 떨어지고 바람은 더 셉니다. 오늘 코스에서 처음으로 사람 구경을 했는데 그 마저도 몇 안 됩니다. 거리는 2백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행정구역 상으로는 상주군에 속해 있는 칠볼봉을 찍고 얼른 하산을 시작합니다.
새벽부터 종일 무거운 하늘을 이고 습한 공기와 바람을 헤치고 먼 길을 오느라 지치고 힘겹지만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게 돼서 다행입니다. 다음 번 이 코스를 다시 타게 되면 이 분들처럼 깔끔한 날씨 속에 걷고 싶습니다. 높은 산 종주의 놓칠 수 없는 맛 중의 하나는 주변 산군들의 끊임없는 조망을 즐기는 건데, 이 분들은 날씨 덕에 원없이 즐긴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맑은 하늘 속에 백두대간의 전망대라고 하는 수도산에서 대간 마루금을 맘껏 눈에 담을 겁니다.
하산하면서 코스를 복기해 보니 목통령 쯤에 산장 같은 숙소가 하나 있어 하루 1박을 하고 다음날 가야산까지 종주를 이어가면 더 즐거운 트렉이자 산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도 해결돼야 하고 지자체의 기획도 필요하겠지만. 날씨가 궂은데도 수도암에서 목통령까지 길은 정말 긴 생각을 부여잡고 혼자 마냥 걷고 싶을 때 어울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좀 길면서도 지형이 험하지도 않고 정말 혼자이고 싶을 때 걷는, 그런 길입니다. 산티아고는 안 걸어 봤지만 왠지 '산위의 하루짜리 산티아고'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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