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10.01.(토) 08:46~16:55

트렉 코스: 오전약수~선달산~갈곶산~마구령

트렉 거리: 15.59km

날씨: 맑음

    

   오늘은 모두 이름이 생소한 만큼 왠지 낯선 곳으로 가는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언제나 대부분 처음 가는 곳이지만 오전약수라는 지명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오전약수는 경북 봉화군 물야면에 있고 조선 성종 때부터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약간 달고 톡 쏘며 철분 맛도 강한 약수입니다.

 

   오늘 트렉지는 인터넷 후기에도 최근 산행의 정보가 검색되는 바가 거의 없어 길도 어찌 될지 약간 불안하고 사람을 만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러면 좀 그런데.... 경험상 아무도 못 만날 수도 있겠네!... 이거 너무 고요한 길이 아닐까....'

 

   오전약수 관광지의 조그만 주차장에서 들머리를 찾기 위해 약 200m 정도 떨어진 약수터로 갑니다.

    가운데 보이는 오전약수터 식당 사이의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약수 공원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다 돌집식당에서 돌아 올라가야 들머리가 나옵니다.

  지도에 표시된 오전약수터와 약수공원, 그리고 돌집식당

   표식을 따라가다 우측에 보이는 집 맞은편에 들머리가 있습니다.

  외씨버선길.

 특이하게도 박달령까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얕은 협곡의 S라인의 길이 이어집니다.

무심코 오르다가 문득 외씨버선이라는 이름과 지금 이 길이 매우 닮은꼴이라는 느낌입니다.

   외씨버선의 버선코처럼 부드러운 선이 일품입니다.

   외씨버선길의 곡선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면 박달령 임도가 나옵니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조금 오르면 박달령 고개가 나오고 선달산으로 가기 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봅니다.

이 부근의 고개 중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입니다. 

  표지석 맞은편의 선달산으로 가는 길.

   선달산으로 가다 이름 없는 봉우리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새벽에 집을 나온 탓으로 허기가 들어 간단한 요기를 합니다.

나무가 우거져 고개를 들고 맑은 하늘만 봅니다.

'선달산은 조망이 좋다고 했는데....'

   숲을 헤집고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밝고 선선합니다.

맑은 기운에 저도 모르게 수리에 집중합니다.

 

   신기한 일도 다 있습니다.

트렉지마다 보였던 비실이 부부의 시그널의 주인공을 만나다니요.

오늘 산에서 처음 만난 분들이고 더구나 시그널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들려준 말을 그냥 지나쳤어요.

 "어디까지 가세요?"

비실이 부부가 물었습니다.

"부석사 까지 가는데요."

목적지가 가까워진 기쁜 마음에 밝게 대답했습니다.

 "아, 멀리 가시네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왜 멀리 간다고 하지?"

 

   그리고는 서로 인사하고  다시 발길을 옮깁니다.

  드디어 선달산입니다.

2007년 어느 분의 후기에는 시원한 조망에 빠져 30분이나 머물렀다는데 지금은 온통 잡목이 우거져 그분이 느꼈던 소중한 30분을 느낄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내리니 하늘만 보아도 정말 행복합니다.

 선달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갈래길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직진하세요.

   늦은목이로 가는 길은 대체로 경사로입니다.

숲과 이끼 풀이 어우러진 마법의 숲처럼 이국적인 풍경도 보입니다.

  늦은목이는 여러 길이 한 곳으로 모이는 '목'입니다.

여기서 사방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합니다.

  늦은목이에서 갈곶산으로 향합니다.

지도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갈곶산으로 갑니다.

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보면 늦은목이에서 부석사로 곧바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지 않은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갈곶산으로 오르는 길은 계속 오르막길입니다.

끝자락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갈곶산에 만난 것은 폐쇄된 봉황산 방향 안내판입니다.

오늘 일정은 갈곶산에서 봉황산을 지나 부석사로 가야 되는데 중간에 허리가 잘린 느낌입니다.

    다시 지도를 자세히 살폈지만 부질없고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미 오후 3시가 되니 예정에 없던 먼 길이 부담스러워 잠시 망설입니다.

 

   이제야 비실이 부부의 말이 이해가 됩니다.

'늦은목이로 되돌아갈까 아니면 마구령으로 가야 될까?'

마구령은 다행히도 지난봄 소백산 트렉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한 번 경험한 곳이라 그곳에 가면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기억이 떠올라 바로 결정합니다.

 '마구령으로 가자!'

   갑자기 마음이 바쁜 만큼 발길도 빨라집니다.

오전 내내 흘리지 않았던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거의 마시지 않았던 물도 들이켜면서 빠르게 빠르게 진행합니다.

다행히 길이 도와줍니다.

 길이 편안해서 3km 정도는 빠른 발걸음도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2km는 그야말로 힘이 들어갑니다.

갑자기 거칠어진 수없는 오르막 내리막에 마음도 바빠 더욱 다리가 무거워집니다.

내내 보이지 않던 멧돼지 흔적과 해가 빠르게 저물어 가기에 조금씩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멧돼지는 해 질 녘에 많이 나타난다는데....'

오늘 코스 중 가장 거친 구간입니다.

  마구령은 끝까지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500m를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힘이 많이 들었지만 다 왔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놓입니다.

 마구령에 도착하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급하게 내려오니 그중의 한 분이 놀란 듯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마구령으로 왔어요?"

"원래는 봉황산으로 해서 부석사로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갈곶산에서 길이 폐쇄되어 마구령으로 왔어요."

"어떻게 가려고요?"

"예, 택시 부르려고요."

그런 중에 마침 택시가 보인다.

그러더니 그분이 택시로 가서 말합니다.

"한 번 갖다 오셔."

함께 놀러 온 일행들을 잠시 내리게 하고 택시로 부석사 주차장까지 내려옵니다.

그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행히도 그분들이 친구였기에 더욱 수월하게 풀린 것입니다.

 

시작할 때 왠지 불안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최근 산행 후기가 적거나 없는 구간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이유가 폐쇄된 길입니다.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예정보다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꼭 보고 싶었던 부석사에 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고찰을 볼 수 없다니! 

 

   오늘은 크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먼 길을 걸었지만 그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제 자신입니다.

첫째, 비실이 부부가 길이 멀다고 말할 때  속으로만 이상하게 여기고 바로 직접 되묻지 않고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둘째, 지도에 표시된  봉황산으로 내려가는 길의 끊김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막연하게 길이 있으리라고 추측하여 무작정 간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지도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대가가 엉뚱한 길이었는데 오늘도 무심코 지나친 것입니다.

 

    먼 길을 돌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이나 기회가 있음에도 그때 바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저의 불찰은 아닐지라도 즉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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