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선재길은 해발 약 650m에 위치한 월정사부터 약 850m의 상원사까지 고도차 200m의 오르막을 무려 9km에 이르는 구간에 펼쳐 놓았으니 이 길을 걷는 건 산행보다는 산책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가벼운 산책은 아니죠. 산길 9km을 걸어야 하니까요. 편도 약 3~4시간이 걸리는 산길입니다. 중간중간 멈추어 서서 경치에 빠진다면 좀 더 걸릴 수도 있구요.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을 가까이 두고 조성한 길이라 걷는 내내 크고 작은 물소리와 함께 걸을 수 있고 대부분 숲길이라 원경보다는 근경을 보는 맛을 주는 길입니다. 가끔 오대천을 건너는 다리들을 건널 때 멀리 오대산과 함께 오대천의 물줄기를 원경으로 볼 수 있고, 해발 700~800m에 위치한 오대산의 식생을 정말 가까이서 보고 관찰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길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고도라는 700m 주변에 만들어진 산길이자 숲길입니다. 사람의 건강에 해발 700m가 어떤 의미인지는 이 글이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하 도전트렉 5회차로 오늘은 선재길을 선택해서 트렉하기로 합니다. 오대산도 몇 번 산행도 해 보았고 선재길도 몇 차례 걸어본 터라 어떻게 하면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새벽에 떠나 이른 아침부터 걷기로 합니다. 분당에서 평창군 진부면까지 새벽에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7시가 좀 지나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오늘 날씨는 오전에는 좀 흐리다가 오후에는 맑은 날씨가 예보돼 있습니다. 평창군 자체가 해발 700m이고 이른 아침이라 기온이 10~11도로 좀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사진 안의 오른편에 구름다리가 보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월정사 경내로 바로 이어집니다. 선재길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월정사 전나무 길로 오늘 트렉을 시작하렵니다. 많은 분들 사진에 나오는, 거대한 전나무가 양옆으로 서 있는 길 보다는 그 맞은편 길로 왠지 발길이 먼저 갑니다. 구름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틀어 들어가면 바로 그 길로 들어섭니다. 들어서면서 마주치는 길이 쌀쌀한 이른 아침의 침엽수숲 느낌과 너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편도 1km 정도인 길을 이른 아침에 이런 날씨속에 걷다 보니 영화에서 본 추운지방의 전나무 숲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분위기 괜찮습니다.

0123
초가을 이른 아침의 월정사 전나무 길 사진모음
월정사 전나무길의 반환점에서

 위 반환점을 돌아 지난온 길의 맞은편 길로 들어서면 예의 사진에서 본 월정사 전나무길이 이어집니다. 분위기가 너무 다르죠? 너무 만든 길 같은 느낌.

 

 

이제 선재길로 접어듭니다.

 

 

예보대로 벌써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같은 날 찍는 사진인데도 날씨가 이렇게 변화하면 같은 장소도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아침 일찍 오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선재길에도 오래된 전나무와 어린 전나무가 자주 보입니다. 아마도 높이가 있어서 활엽수에 밀리지 않고  비교적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백만년 동안 서서히 침엽수가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져 밀려나는 추세에 있다고 하니 이런 침엽수 군락을 만나면 더 반갑습니다. 

 

 

선재길은 동대천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기 때문에 근경이든 원경이든 물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01234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나무입니다. 거제수나무라고. 선재길에 많이 보이지 않지만 잊을만 하면 보입니다. 자작나무 수피처럼 거제수나무도 수피가 종잇장처럼 벗겨집니다. 수피 색깔이 연분홍빛을 띤 황색인데 영락없이 색깔만 다른 자작나무로 보입니다. 아래 설명을 보니 이런 수피를 갖고 있는 나무가 사스래나무라고 하나 더 있네요. 이 세 나무중 자작나무만 우리나라 자생이 아니랍니다. 사진을 정리할 때 보니 어찌 거제수나무는 사진이 없네요. 대신, 수피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보면 다르게 보이는 물박달나무 사진을 옆에 붙입니다. 수피만 가지고 나무를 알아볼 수 있으면 겨울에도 문제없이 이름 정도는 알 수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나무의 종류, 생장 지역이나 기타 생태환경, 나이에 따라 땅덩어리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나무가 서로 다르게 보이는 걸 자주 보거든요. 그래도 다 크게 자란 나무들은 눈높이에 보이는게 수피라서 수피를 먼저 보는 편입니다.

 

 

아래 불상, 선재길에서 만난 예술작품입니다. 쓰러진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대산 전체에는 최근에 만든 것, 오래된 것 등 불교와 관련한 건축물, 예술품, 유적 등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번 트렉에서 새롭게 안 것인데 오대산 전체가 월정사 소유라는 것. 그래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가야산을 오르고 해인사로 막 내려가려는데 산 정상에 '여기서부터는 해인사 사유지입니다' 라는 팻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이렇듯 대형 사찰이 산 전체나 일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례는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상의 모습을 한 예술작품

 

이 불상을 지나면 걸어온 길이 더 많고 상원사까지 남은 길이 그만큼 적어집니다. 아래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 경치 몇 컷 더 올립니다. 깨달음을 향해 걸어가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이름을 따 지은 선재길. 걸으면서 명상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 분위기라도 타려면 선재길 걷기는 정말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사람 없는 계곡, 길이 보이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립니다.

 

0123456
아침햇살로 반짝이는 선재길 모습

어느 덧 상원사에 다다랐습니다. 선재길 시작전 전나무길을 걸었던 시간 포함해서 4시간 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좀 다른 방식으로 걸어볼까 생각해서 새벽 일찍 출발했고,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왕복도 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버스를 안 타고 다시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가끔 걸어온 길을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고, 같은 모습도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게다사 경사가 정말 완만한 선재길이어도 내리막은 내리막이라 내려가는 길은 훨씬 수월할 것이구요.

 

가을이 되면 땅에 떨어진 많은 열매를 볼 수가 있습니다. 아래는 상원사 경내에서 본 호두나무 열매입니다. 언젠가 같이 트렉을 하던 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호두나무 열매는 보드라운 겉껍질에 쌓여 있다고 했는데 이제야 확인하게 되네요.

 

 

정오가 조금 지난 강렬한 햇빛 속에 선재길은 이제 화사하고 화려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사람도 많아지고 느낌이 오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어울려 재잘거리며 걷거나 계곡 바위턱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어울리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012345

다시 선재길의 시작인 월정사로 돌아왔습니다. 내리막길이고 혼자여서 오르막길보다 3~40분 정도 적게 걸렸습니다. 아래 월정사 모습은 오후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경내에서 그나마 사람 발길이 뜸한 곳이었습니다.  비껴서 들어오는 햇살이 한옥 건축물을 더 돋보이게 합니다.

 

 

오대산을 산행으로 제법 찾았음에도 선재길을 이렇게 온전하게 그것도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걸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초입의 전나무길과 함께 가끔 심난할 때 찾아보고 싶은 길입니다. 다음에도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찾아와야 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제가 진부면이나 근처에 오면 가급적 들르는 부일식당에서 이번에도 산채 정식을 먹고 갑니다. 오대산 주차장을 나와서도 맛있는 집이 많지요, 근데 대부분 대형 음식점들이라 좀 번잡하죠. 부일식당은 차로 월정사 주차장에서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고, 진부IC에서도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나물맛이 좋고 인심이 후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