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트렉은 섬이긴 한데 더 이상 섬이 아닌 곳, 시간이 흐를수록 해저터널로 손쉽게 왕래할 사람들로 원래 간직했던 모습이 빠른 속도로 사라질 충남 보령시 원산도입니다. 원산도에서도 이전 같으면 배로 닿았을 저두 선착장에서 해안길을 따라 대부분 고도 100m가 안되는 나지막한 산들을 넘으면서 섬의 서쪽 끝으로 진행하는 트렉입니다. 해저터널이 개통된지 얼마 안돼 아직은 배로만 닿을 수 있었던 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루 내내 아름다운 날씨 속에 해변과 산길을 걸었던 시간이 트렉이 끝났어도 여전히 삼삼합니다. 

 

트렉일자: 2022년 1월 29일(토)

트렉코스: 저두 마을 -> 당산 -> 큰산 -> 원산도 해수욕장 -> 당산 -> 사창해수욕장 -> 안산 -> 오르봉 -> 오봉산 -> 증봉산 -> 범산 -> 초전마을 -> 저두 마을. 약 20km 거리

교통: 저두 마을회관을 목적지로 자차로 이동. 초전마을에서 시작점인 저두 마을까지는 원산도 마을버스와 도보(약 3.5km)로 이동.

날씨: 트렉 시작 시점인 아침 8시는 영하 1~2도. 낮에는 영상 3~4도. 바람도 없고 시야도 트이는 아주 맑은 날씨.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제목엔 종주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종주는 아닙니다. 원산도의 동쪽끝 마을에서 서쪽끝 마을로 해안 길을 걸으며 해변도 걷고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선 야트막한 산들을 만나면 산을 넘어 걸어가는 둘레길형 트렉입니다. 좀 색다른 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주민들도 별로 올라갈 일 없는 산들이라 길이 잘 안보인다라는 점이죠. 오리엔티어링을 한다고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고 길을 찾다가 못찾겠으면 모두 고도가 낮아 방향만 잡고 그냥 내려오면 되니 산 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한번 걸어보니 전체 코스를 아래와 같이 대략 3구간으로 구분을 지을 수 있겠습니다.

 

(당산 -> 큰산 -> 당산 -> 안산) 구간: 산의 이름은 없어도 마을에 서 있으면 금방 '아 저 산이구만' 할 정도로 올라야 할 산은 쉽게 찾아지고  들머리 찾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들머리를 찾으면 간간이 보이는 리본들이 안내자 역할을 하고 길도 때론 희미하지만 있어서 오르고 내리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저두마을 당산에서

 

( 안산 -> 오르봉 -> 오봉산 -> 증봉산 ) 구간: 올라야 할 산도 쉽게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성해 놓아서 그런지 길이 잘 나있고 이정표도 있는 구간입니다. 오르봉은 오래된 봉화대가 있어 수풀에 갇힌 다른 산 정상과 달리 탁 트인 전망을 보여 줍니다.

 

 

(증봉산 -> 범산) 구간: 좀 난감한 구간입니다. 범산으로 가까이 갈수록 대부분 길이 없고, 지형도 거친 편입니다. 방향을 잡고 갈 수는 있어도 수풀이 우거져 겨울임에도 심난하게 헤쳐가야 합니다. 이 분의 GPX 정보가 없었으면 방향 찾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콘도 개발 예정지라 한창 벌목이 진행되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산의 모습도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이 코스에는 이렇게 해변을 따라 늘어선 산도 있지만 원산도, 사창, 오봉산 해수욕장 등 아담한 해수욕장 들이 군데군데 있어 산행과는 다른 걷는 맛이 있습니다.

 

원산해수욕장
구치해수욕장
사창해수욕장

 

산길을 걷다가 맘이 내키면 그냥 해변쪽으로 틀어 내려가서 모래사장과는 다른 느낌의 해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곳 원산도의 산은 모두 야트막합니다. 하지만 일단 산에 접어들면 분명 바다가 가까이 있긴 한데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곳이 바다라면 단점이겠지만 사방팔방 바다인 섬에서 숲길을 걷고 싶다면 분명 장점입니다.

 

원산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큰산입니다. 정말 야트막하죠? 산을 넘을 수도 있고 원하면 산을 에둘러 바다를 따라 걸을 수도 있습니다. 

 

원산도에서 제일 높은 곳, 오로봉에 서 있는 봉수대입니다. 고도 116m. 이 곳에 서 있으면 주변이 훤히 보입니다. 높이가 있어서 그렇기보다 봉수대를 만들면서 주변을 정리해서 시야를 확보한 것 같습니다.

저두마을부터 걸어온 길(왼쪽)과 오봉해수욕장. 오로봉에서

 

아름다운 섬인데 눈부신 날씨 덕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먼저 다녀간 사람의 방향 정보와 감각에 의존해 범산을 하산한 후 벌목을 위해 낸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집입니다. 버려진 집이지만 집 앞 바로 앞에 커다란 나무와 길을 사이에 두고 작은 대숲을 두고 있습니다. 개발 예정지 가까이 있어 아마도 없어질 것인데, 터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오늘 트렉중 만난 대숲중 가장 큽니다. 이곳 초전마을 뿐만 아니라 이 섬 전체가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저곳 파헤쳐진 곳이 많습니다. 공사 전 대숲앞이 이것보다 훨씬 멋졌을텐데요. 바로 앞이 바닷가로 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소리는 동영상으로 잡았습니다.

 

저두마을에서 시작해 이곳 초전마을까지 오면 돌아갈 길이 좀 난감합니다. 걸어가려면 7~8km를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니까요. 해저터널이 뚫리기 전 마을버스 운영이 허가가 나 운영중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디서 타는지 기다리면 오는지 궁금해 하던중 한 주민을 만나 얘기를 하다가 운좋게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게 됩니다. 코스가 제 차가 서 있는 저두마을까지는 가지 않고 점촌마을까지만 간다는데, 그것도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기사분한테 오늘 산행을 얘기하면서 오늘 제가 트렉한 코스를 일종의 둘레길로 만들면 좋겠다고 하니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제가 걸었던 대부분의 산이 벌써 사유지라고 하면서요.

 

기사분이 버스는 목적지가 선촌항이라고 하면서 점촌마을에서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저두마을이라고 하며 내려주십니다. 버스는 벌써 저 멀리 보이고 저는 저두마을로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꽤 큰 기념비가 보여 살펴보니 우리나라를 방문한(1832년) 최초의 서양 개신교 선교사인 독일인 칼 귀츨라프 기념비입니다. 선교의 기점이 이곳 원산도인지 아니면 고대도인지 여전히 확실치 않지만 원산도엔 이렇게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고대도엔 선교기념관이 세워져 있다네요. 뱃길이 유일한 교통로 역할을 했던 시대, 외부세계와의 교류는 이렇게 크고 작은 항구가 통로 역할을 했을 겁니다.

 

보령 해저터널 개통과 함께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원산도. 앞으로 많이 변할 겁니다.

부디 본래의 아름다움이 지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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