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 4. 9.(토) 06:47~18:25
코스: 소석문~덕룡산~주작산~땅끝기맥분기점~오소재
거리: 13km
내겐 생소한 강진 공룡능선코스.
사전준비로 블로거와 유튜브를 탐색할 수록 위험하고 힘들다는 내용들이 많아서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먼저 다녀온 도반에게 어땠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다른 곳으로 변경하고 싶은 마음을 꼭 참고 도전해보기로 한다.
지칠 경우를 대비해서 간식을 넉넉히 챙기고 잠도 충분히 자고 .......
소석문에 도착하니 주차장이랄 게 없고 도로가 주차장을 대신한다. 다행히 화장실은 있다.
택시기사분들이 대기하고 있으면서 등산객들에게 번호를 주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다.
도로 좌우에 들머리가 각각 있는데 계곡쪽이 덕룡산 방향이고 반대편은 석문산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간 듯 하다.
숙소에서 새벽 3시 반부터 움직였지만 일출을 보기엔 출발이 좀 늦었다.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보니 강진평야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바위와 돌틈으로 이루어진 능선 사이 사이에 쇠고리 난간과 밧줄로 이어진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발걸음에 긴장감이 실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지나온 듯 해도 겨우 200~300m정도 밖에 진행이 안 되고 소석문에서 동봉까지 2km 조금 넘는데 2시간이 더 걸렸다.
바위에 물든 진달래가 날카로운 능선의 위압감을 아름다움으로 바꿔주고 있지만 내 심장과 다리는 후들거리길 반복한다. 어느 봉 앞에서 쇠난간이 높아 망설여지는데 마침 우회길이 있다. 우회해 가다 갑자기 서봉을 지나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반대편에서 다시 올라간다. 너무 가파르고 문제는 다리가 짧다. 이미 서봉을 올랐다 내려오시던 도반이 위험해서 안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정상을 바라보며 미련을 버린다. 이후론 우회길도 없지만 우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가고 또 가도 몇 km밖에 진행이 안된다.
맑은 하늘에 따뜻한 봄기운이 넘치고 바위들과 어우러진 진달래는 훨씬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덕분에 긴장과 두려움을 조금씩 내리며 용기를 낸다.
잠시라도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게 반갑고 고맙기까지 한 작천소령으로 가는 길.
봉우리를 오르내릴 때마다 나타나는 밧줄과 쇠고리 난간이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한다 .
참으로 거친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고 활기가 넘친다.
덕룡산의 동봉 서봉을 지나 주작산의 덕룡봉에 이르고 다시 오소재 방향으로 간다.
땅끝마을 기맥 앞에서 건너편 오소재 가는 능선을 바라본다.
주작산 휴양림쪽과 오소재에서 오신 분들이 엄청 힘들다고 하신다.
나는 덕룡산이 더 힘들거라고 했지만, 능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늠이 안된다.
덕룡봉에서 내려오면 주작산 휴양림 임도길과 만나고 여기서 다시 주작산 정상으로 연결된 곳으로 올라오면 쉼터가 있다.
잠시 한숨 돌리고 좌측 봉우리쪽으로 갔다가 다시 우측으로 와서 오소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순간순간 힘겨움을 잊게 해주는 꽃과 어우러진 풍경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렇게 밧줄 타기를 해야 하는 순간들도 수 없이 반복된다.
올라가는 팀, 내려오는 팀. 기다림의 순간들도 수 없이 반복된다.
끝나지 않는 암릉능선 오르내리기 반복에 영혼이 탈출하려고 할 때면 바위에 기대어 강진평야와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지치지 않으려고 간식을 먹고 또 먹는다. 그래서인지 속이 더부룩하다.
날씨와 풍광, 아찔함이 끝내 주는 날!
오소재 2.3km 안내판을 보니 기쁘다.
1시간쯤 전
3.4km 안내판을 만나기 전에 오소재 방향에서 오시는 분에게 넘어야 할 봉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또 밧줄은 몇개 정도나 있느냐고 물으니
"아직 멀었어요 밧줄은 수도 없어요. 나는 힘들어서 되돌아가는데 지금 시간이 많이 됐는데 오소재까지는 못가요."
하신다.
'헉 되돌아 가는 코스가 더 험난 할 것 같은데 어찌 가시려고 ....' 그런데 다행히 비상탈출로가 있다.
트렉하면서 비상탈출로란 문구가 적힌 안내판은 처음이다.
3.4km 표기를 봤을 때의 안도감이란 ~! 이제 늦어도 어두워지기 전엔 도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소재가 가까워 질수록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험난한 구간을 잘 넘긴 것은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서다.
모르는 분들이지만 가까이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불안하지 않고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산에서만 가질 수 있는 감정?
그런데 이제 지나치거나 마주치는 분들이 거의 없다.
덕룡산에서 오소재까지 가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았는데.....
출발시부터 보였던 부부는 부인이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탈출로로 하산하고 대부분은 덕룡산에서 주작산 휴양림으로 내려가고, 오소재에서 오시는 분들은 오후 시간대라 이미 다 반대편으로 간 상태인 것 같다.
산이 고요해지니 나도 고요해지면 좋으련만 불안해지려고 한다.
다행히 도반님이 옆에 있다. 도반님이 없었으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몰려온다.
아찔한 공간에서 나혼자 줄타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No!
더욱 도반님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제 저 맨 뒤에 보이는 두륜산 앞까지만 가면 된다.
길도 점점 부드러워진다.
드디어 오소재 주차장이 보인다.
평평한 도로를 밟으니 살 것 같다.
우리 오늘 정말 애썼고 잘했다고 도반님과 서로 위로를 듬뿍한다.
트렉을 하면서 알게 된 고소공포증과 무섬증이 오늘 맘껏 발휘되었지만 그동안 단련된 경험으로 무사히 잘 넘겼다.
휘청거리거나 위험한 순간마다 무언가 보호받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
집중하느라 종일 딴 생각을 못했더니 이상하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 같다.
참으로 감사하다. 방하트렉, 도전트렉, 칩, 수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