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산이 높으면 지맥이 많고, 그만큼 면적도 큽니다. 주봉이 1200m가 좀 넘는 백운산도 그런 산 중의 하나입니다. 면적이 약 7천2백만평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국립공원인 지리산(약 1억3천만평)의 55%가량 되는 큰 산군입니다. 면적의 대부분(80%)이 광양시에 소재해 있고, 18%는 구례군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산이 큰 만큼 코스도 많은데, 오늘은 옥룡면 동곡리의 진틀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다압면 도사리에 있는 매화마을(청매실농원)을 날머리로 하는 약 20km 길입니다. 해발 400m가량 되는 진틀마을에서 백운산 정상까지 소요시간 약 3시간, 5km 정도 되는 구간이 이 코스의 급한 오르막길이고, 백운상 정상을 지나면 그때부터 쭉 고도가 낮아지면서 매봉, 갈미봉, 쫓비산 등의 키 작은 봉우리들을 넘는 굴곡이 후반 구간입니다. 늘 그렇듯 후반부에 만나는 봉우리는 넘기가 고된데 이 코스에서는 갈미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그런 길입니다. 

 

아레 코스 지도에서도 보이듯 후반부 구간은 왼쪽으로 섬진강이 따라붙어 가끔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갈미봉으로 오르는 길과 갈미봉 정상, 쫓비산 정상이 그런 곳입니다. 

진틀마을 -> 백운산 -> 갈미봉 -> 청매실농원(지도 출처: 구글어스(Google Earth))

  • 트렉일자: 2022년 3월 26일(토)
  • 트렉코스: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진틀마을 -> 신선대 -> 백운산 -> 매봉 -> 갈미봉 -> 쫓비산 ->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청매실농원)
  • 날씨: 능선에서의 기온은 영상 2~3도, 바람은 초속 7~8m 때론 10m 이상 되는 센 바람.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내린 비로 오전 내내 짙은 안개.  
  • 교통: 자차. 가는 길에 남원에서 숙박. 트렉 종료후 매화마을에서 진틀마을까지는 택시(약 1시간으로 50km를 상회하는 먼 길). 버스가 있긴 하나 2번을 갈아타야 하고, 그마저도 매화가 피는 시기에는 주변 교통체증으로 운행이 예측 불가.

 

오늘 날씨 이렇습니다. 집에서 차로 출발하면서 챙겨본 예보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비가 오고 아침부턴 그칠 거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되더군요. 전날 남원에서 잘 때만 하더라도 밤 늦게까지 비에 바람에 과연 다음날 트렉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대신 밤새 내린 비로 산공기는 습기를 잔뜩 먹고 있어 시야는 사방팔방으로 막혀 있습니다. 경치가 막히면 아무래도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 이제 막 피고 있는 산수유와 백운산 이쪽 산촌 주민들의 주소득원 중의 하나인 고로쇠나무 조림지가 보입니다. 이 코스의 들머리는 고로쇠, 날머리는 매화가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고로쇠 나무 수피는 단풍나무 수피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단풍나무과에 속한다고 합니다. 마을과 가까운, 고도가 낮은 곳에 있는 고로쇠 나무엔 사진에서 보이는대로 구멍이 많이 나 있습니다. 고로쇠 수액을 얻기 위해 뚫은 것들입니다. 

 

진틀마을로 올라가다 보면 백운산 일부(무려 45%)가 서울대의 남부학술림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인 1912년 동경제국대학이 연습림으로 관리해 오던 것을 해방후 서울대가 미군정청으로부터 무려 80년간의 관리권을 받아 학술림으로 쓰고 있는데, 이게 2026년 종료랍니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양여를 추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이것을 막고 내친 김에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광양시의 움직임이 있는데, 백운산의 약 25%를 안고 있는 구례군의 반대와 그 밖의 여러 사정으로 실제 될 지는 아직 미지수로 보입니다. 사정이 복잡합니다(-> 관련 기사).

 

신선대를 지나 백운산 정상, 그리고 그 넘어 매봄으로 가는 길까지 예보대로 안개가 자욱합니다. 밤새 강풍 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간밤에 바람이 셌는데, 능선에는 여전히 잔바람이 있습니다. 체감으로 초속 10m가 훌쩍 넘는 곳도 있었구요. 바람세기가 초속 10m가 넘어가면 걸을 수는 있는데 바람이 세차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많은 날 설악산 대청봉 주변엔 초속 20m가 넘는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걷는 게 안될 뿐만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물체에 다칠 수도 있습니다. 

신선대 주변

백운산 정상은 제법 큰 암봉인데 정작 꼭대기는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비좁습니다. 그래서 산의 규모와는 안 어울리게 정상석이 아담 사이즈입니다.

백운산 정상석

오늘 날씨 예보 잘 맞습니다! 코스 후반부에 진입하는 오후 들어 정말 비온 후 상쾌한 날씨가 펼쳐집니다. 산행중 맞는 최고의 날씨입니다. 햇살이 비치고, 바람과 비로 먼지가 걷혀진 깨끗한 공기, 깨끗한 하늘에 간간히 보이는 구름들, 가끔씩 부는 봄바람, 아직은 더위와는 먼 기온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좌측에는 섬진강, 우측에는 억불봉이 길을 따라 계속 시야에 들어옵니다. 지난 번 백운산 산행때도 지척에서 억불봉을 지나쳤는데 오늘도 멀리서만 바라봅니다. 주산보다 높이가 약 200m 낮아서 그렇지 생김새로 보면 백운산 정상은 억불봉으로 보입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억불봉까지 편도로 5km가 넘어 오늘 이 코스에 넣기에는 좀 무리입니다. 

 

드디어 섬진강이 눈에 온전히 들어옵니다. 갈미봉으로 향하는 힘든 오르막길 2/3 지점쯤 됩니다. 갈미봉 정상에서 보이는 섬진강도 멋지지만 이곳이 처음 터지는 섬진강 조망이라 좀 더 시원한 맛이 있습니다.

 

널찍한 갈미봉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놓여 있습니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갈미봉을 지나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쫓비산입니다. 이름의 배경은 명확치 않은데 발음 자체가 이쁘고 귀엽습니다. 높이도 500m 정도로 매화마을에서 출발해서 1시간 가량 걸으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맘때면 매화마을 주변은 차량 홍수랍니다. 오늘도 코로나로 매화축제가 취소됐는데도 차량과 사람들로 그득합니다. 매화꽃을 보기 위한 인파 때문인데, 굳이 산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멀리까지 매화를 보러 왔다면 쭟비산까지는 함 걸어보시는 것이. 매화마을 전경뿐만 아니라, 섬진강과 주변 산들이 만들어 내는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인파는 쏙~ 빼고 매화꽃과 마을 전경, 강 건너편을 담았습니다. 가까운 풍경 먼 풍경, 거기에 매화꽃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오늘 이 백운산 코스는 완주하는데 대략 8~9시간이 걸립니다. 날씨와 기분에 따라서 매화마을에서 출발해서 진틀마을로 갈 수도 있고 저처럼 진틀마을 들머라, 매화마을 날머리로 할 수도 있습니다.. 매화마을에서 출발하면 백운산까지 천천히 길게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것이 다르겠지요. 시간이 많지 않다면 매화마을에서 쫓비산이나 갈미봉까지 왕복하는 것도 이 코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완주를 한다면 교통이 애매합니다. 특히, 매화꽃이 피는 때는 대중교통은 못 탄다고 봐야 합니다. 밀리는 차량들 때문에 버스가 안 다니거나 시간 예측을 불허합니다. 택시를 타도 1시간이 꽉 차게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택시를 타고 진틀마을로 되돌아 오니 저녁 시간이 다 된 5시 30분입니다. 근처에 무슨무슨 산장이나 가든이 많은 데 거의 모두 영업을 안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어야 문들을 열까요? 아무튼 아래 사진에 보이는 이곳(옴서감서)이 유일하게 열린 곳이었습니다. 밥 인심도 좋고 무엇보다 주인장 손 맛이 좋습니다. 밥을 먹으로 광양시내까지 가지 않을 거라면 훌륭한 선택입니다.

 

※ 방하도전트렉 후기에 왜 트렉이라는 말을 쓰고, 굳이 산행이나 등산과 구별해서 쓰는지 알고 싶으시면 이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트렉에 대한 소개와 트렉중 차고 다니는 매스밴드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방하도전트렉은 방하에서 운영하는 이 트렉이라는 프로그램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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