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부와 서부의 오름이
선택지로 나왔을 때
숲이 좋고 많이 알려진 동부를
두고 처음 가는 서쪽을 택했다.
비바람이 심해 9시 넘어
출발지인 바리메 주차장에 도착.

다행히 빗줄기는 약해지고
처음에 쭉 뻗은 숲길을 보니
찬바람과 짙은 안개도
모두 좋아보인다.

그런데 차츰 걸어가다 보니
오리무중에 빠지는 듯하다.
갈라지는 지점에 이정표도 없고
안개와 비바람때문에
길 찾는 게 쉽지 않다.
오늘은 안전하게 동행자를
뒤따라 걷기로 한다.

낮은 경사지만 계속 올라가다가
어느 지점에 검은들먹오름이라 알려주는데 표지석도 없고
오름이라 느껴지지도 않는다.


서둘러 뒤따라 다시 걷는다.
길이 미끄럽고 덩어리진 흙이
신발에 붙으니 다리가 무겁다.
지대가 높아지면서 손가락이
시리고 굳어진다.
이러다 동상 걸리겠다 싶어
더 빨리 걸어본다.
제법 올라간 듯한데
한대오름이라고 한다.
역시 표지석도 없다.
주변도 보이지 않는다.

쉴틈도 없이 한라산이 보인다는
1068미터 노로오름으로 간다.
급경사는 아니어도
계속 올라가는데다
기온이 점점 떨어져서
젖은 발가락이 시려온다.


물러날 수도 없다.
비바람이 더 심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가는 수밖에.
다행히 오늘은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앞으로 걷는 데만 집중한다.


드디어 노로오름.
그나마 표지석이 있지만
사방 주변은 볼 수가 없다.

여기서 동행인이 제안한다.
길도 미끄럽고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지 말고 가까운
1100고지로 빠지는 게 좋다고.
망설임없이 따르기로 한다.

노로오름에서 한라산 둘레길
천아숲으로 나오게 된다.
거기서 또 하나의 결정을 한다.
천아숲 둘레길로 나가는 대신
교통상 1076m 살핀오름을
거쳐 1100고지로 가기로.


그 때부터 고생길에 들어선다.
허벅지까지 올라온 조릿대.
무성하게 자란 조릿대를
한참 걸어도 길이 없다.
지도를 보며 살핀오름
근처로 갔지만 제대로 난
길이 없다.
계곡길도 심하게 파여있다.
조릿대 밑에 돌이 있거나
움푹 패인 곳도 있어
몇번이나 넘어지기도 한다.


한참 조릿대 숲에서 고전하며
순간 후회가 올라온다.
노로오름에서 원래대로 바리메오름으로 하산했더라면...
한라산 둘레길로 갔더라면...
그런 가정은 필요없는 생각인데..
얼른 마음을 추스린다.

드디어 도로가 가까운 곳이다.
내 인생에도 없는 길을 만들며
막막한 시간을 견뎌내는 때도
있었겠거니 생각해 본다.
1100고지 휴게소로 나오니
찬바람에 상고대가 맺힌다.



힘들게 1100고지로 나오니
이런 선물도 있고 반갑다.
안전하게 트렉을 마친 것도
고맙고 길을 찾아 내려오게
해 준 동행인도 고맙다.



1100고지 휴게소에서 본
한라산국립공원 안내도.
노로오름만 나와있다.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된다면
오늘 못다한 서부 6개오름을
맑은 날 가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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