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11.13


◈코스
육십령 → 서봉  남덕유산  월성재   삿갓재대피소  무룡산  동엽령  백암봉  중봉  향적봉  설천봉 무주리조트(곤돌라 이용) 

◆이동
11.12 23:30 사당역, 안내산악회 버스 승차(39,800원)
11.13 02:50 육십령하차

        17:30 무주리조트, 안내산악회 버스 승차

        20:30 서울 양재, 하차

 

 

지리산, 설악산과 더불어 3대 종주 코스로, 그리고 겨울 눈꽃 산행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덕유산. 6월에 지리산 종주(성중종주)이후 다음 종주 코스로 마음먹고 있던 곳인데 덕유산은 지리산 처럼 물보급이 쉬운편이 아니라 한여름은 피하고 가을쯤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산불방지기간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가보게 됬다. 다음주부터는 산불방지기간으로 한달간 대부분의 탐방로가 폐쇄된다.

 

주중에 갑자기 기온이 많이 떨어져 주요 국립공원 산들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첫 눈꽃 산행까지 하겠구나 싶어 기대가 많이 됬다. 

 

자정에 안내산악회버스를 타고 새벽 3시경 육십령에 도착, 육십령은 성삼재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인적이 드물고 불빛도 하나도 없었다.

 

버스에 내려 잠시 신발과 옷을 정리하는데 같이 버스를 타고 온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전부 우르르 등산로로 올라가 버렸다. 아무리봐도 모두 같은 일행들은 아닐텐테.... 물론 종주하는 사람들이라 서두르는건 알겠는데 다 같이 올라가니 약간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초행길인데 같이 움직일걸 그랬나...' (이게 기시감이 였나.....) 육십령 근처 좀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10분정도 늦게 출발했다.

 

등산로 진입하자 마자 정말 사방이 어둡고 길도 좋은 편이 아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 출발했고 나 혼자 어두운 산길을 걸을라니 길을 잃을가 겁도 나고... 확실히 여름철 새벽하고 겨울철 새벽은 어둠의 농도(?)가 달랐다. 게다가 차가운 날씨에 날까로운 바람소리가 사방을 감싸니 정말 을씨년 스러운 느낌이다. 불안해서 일단 앞서 간 사람들과 합류해야 겠다 싶어 발걸음을 빨리 했다.

간간히 보이는 위치 표지판에 안도하면서 30분 정도 걸었을 쯤 앞에서 헤드랜턴 불빛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빨리 다가갔는데 이분이 길이 못찾아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이분도 같은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오신분인데 백두대간 종주 중이시란다. 중간에 비박도 할 계획이라 짐(배낭) 무게도 25kg나 되셨다. 나도 같이 살펴보는데 길이 잘 안보였다. 약간 넓은 바위위에서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방향인데 길이 명확히 보이지를 않았다. 분명히 좀전에 위치 안내판을 보고 온터라 길을 잘못든거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뭇가지에 리본도 달려 있었다!

일단 이분은 짐이 많아서 움직임이 쉽지않아 내가 앞장서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길을 찾아봤다. 렌턴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어두우니 길이 명확히 구분이 잘 안됬다. 10여분 이상 해매다 스마트폰 지도앱을 실행하고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는데 왠지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나가 있는 느낌이였다. 나도 불안하고 이 종주하시는 분도 같은 마음 이였는지 일단 같이 움직이자고 의견을 모은 후 방금 좀전에 지나친 위치 안내판으로 되돌아 갔다. 

위치 안내판으로 되돌아 가보니 위치 안내판 오른쪽으로 길이 선명히 보였다. 선명한 길이 보이자 반가운 마음에 이 길인가 보다 하고 그냥 무심코 그길을 따라 갔다. 사실 이길은 처음에 올라왔던 길이였다. 육십령으로 다시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내려가다 올라오는 한일행들이 우리가 이상했던지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고 물었다. 하기야 이새벽에 육십령으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는게 당연히 이상했겠지.... A:"어디서 오시는건가요", 나:"육십령이요",  A:"???? 저희가 지금 육십령에서 올라오고 있는건데요?", B:"이길은 육십령으로 가는 길이에요". 순간 멘붕이 왔고 잠시 뒤 아차 싶은 생각이 났다. 다시 급하게 왔던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다시 나오는 아까의 위치 표지판... 덕유 11-03 지점.

다시 가서 보니 이 표지판 왼쪽으로길이 있었다. 근데 너무 어두운데다 길이 아래로 내려가는 방향이라 잘 보이지를 않는다. 위치 안내판이 세워진 위치도 그렇고 심지어 그 위에 달린 리본들 위치도 그렇고 정면으로 그냥 진행하기 십상이였다. 아까 막다른 곳에서 다시 이 표지판으로 되돌아 왔을 때는 이길을 봤으나 무심결에 이길이 올라온 길인줄 착각했던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는 초행자들이라면 이 깜깜한 새벽에는 십중팔구 무조건 직진방향으로 가서 나처럼 막다른 곳을 만날 거다. 문제는 그 막다른 곳에도 리본이 달려 있었다는 거다!!. 도대체 누가 무슨생각으로 거기에 리본을 달아놨을가? 정말 그쪽으로도 길이 있는 걸까? 여지껏 산에 다니면서 리본 때문에 길을 헤맨건 이번이 처음이였다.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 대신 인터넷에서 찾은 덕유 11-03 위치 표지판. 사진으로 보이는 정면으로 가야 할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저 표지판 왼쪽으로, 그것도 아래 방향으로 길이 있다. 여기는 리본들도 좀 정리해야 할거 같다. 리본 위치도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 쉽상이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 덕유 11-03에 대한 주의의 글을 찾아 볼 수있었다 ㅠ.ㅠ

너무 시간을 지체해 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쳐 왔는데 리본들이 마음에 걸린다. 또 얼마나 많은 초행자들이 저기서 길을 헤멜가? 리본들을 그냥 두고 온게 마음에 남는다. 특히 막다른 곳에 걸려있는 리본.... 다음에 가게 되면 그건 꼭 제거해야지...

 

길을 못찾아 헤메고 육십령을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는 통에 1시간 가량은 허비했다. 아까 막다른 길에서 만나분하고는 계속 동행을 하기로 했다. 날도 어둡고 길도 한번 잃어보니 아무래도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 게다가 둘다 초행길이다.

 

할미봉 도착.

  

할미봉 이후부터는 길에 눈이 쌓여 있어 아이젠을 착용했다. 

 

7시 가까워지자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주보다도 일출시간이 늦어진 느낌이다.

 

7시가 넘어가면서 거의 날이 밝았다. 육십령 ~ 할미봉 중간에서 길 못찾아 헤맨데다 같이 동해하던 분은 배낭 무게가 25kg이나 되서 확실히 보행 속도가 더뎌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됬다. 날이 밝으니 혼자서 가는데 무리는 없을거 같아 서로의 안전을 빌고 헤어져 서봉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할미봉 이후부터는 눈이 정말 많이 쌓여있었다. 서봉이 가까워질 수록 겨울왕국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눈이 많이 내렸다. 이렇게 눈 많이 쌓인 풍경은 오랫만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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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40분이 넘어서 서봉에도착. 예정시간보다 1시간 40분이상 늦었다. 정상석들이 다 꽁꽁 얼었다 ㅎ.

 

서둘러 남덕유산으로 간다. 초반에 시간을 많이 지체한데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생각보다 보행 속도가 안나오는거 같다. 살짝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바람도 거세고 시계도 않좋아 주변 지형은 하나도 안보인다.

 

남덕유산 도착

 

시계가 안좋아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없다. 사진기를 들고 시계가 좋아지기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몇분 계신다. 뭔가 구름뒤에 멋있는 풍경이 숨어있을거 같은데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삿갓재 대피소로 이동했다. 남덕유산을 내려오니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정표는 향적봉까지 15km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보행 속도가 시속2km가 안된다. 버스 출발 시간인 5시 30분까지 구천동으로 하산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아슬아슬 해 보인다.  일단 서둘러 삿갓재 대피소로 가본다.

 

눈이 쌓이니 보행속도도 안나고 힘도 많이 든다. 게다가 눈 무게를 못견딘 나무 가지들이 밑으로 쳐져 거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다. 어떤 나무들은 눈무게 때문인지 간밤에 강풍때문인지 넘어져 길을 막고 누워있다. 마음은 급한데 보속을 올릴 수가 없다. 그리고 체력소모도 심한거 같다. 벌써 다리가 무거워 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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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비추면서 기온이 올라가는지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간간히 눈덩이 들이 머리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11시 40분경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 구름이 걷히고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 덮힌 덕유산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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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향적봉까지는 10.5km가 남았다. 이미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종주는 불가능, 종주는 둘째치고 설천봉까지 가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서 버스 시간을 맞출수있을지도 걱정이 된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점심만 간단히 먹고 바로 출발. 근데 몸이 이미 많이 지쳤가고 있다. 일단 다리가 너무 피곤하다. 지리산 종주 때보다 훨씬 힘든거 같다. 지리산 종주때도 이렇게 빨리 지치지는 않았는데.... 눈때문인가... 버스를 놓칠가 걱정이 된다. 마음이 급하다.

 

무룡산으로 가는 능선에서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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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재 대피소 이후부터는 사실 버스 시간에 쫒겨 주위를 둘러볼 경황도 없고 주변 경관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룡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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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비추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니 길이 질척이기 시작한다. 등산화가 젖어들기 시작한다.

 

동엽령 도착

동엽령에 도착하자 산행대장님으로 부터 안내 문자가 온다. 곤도라 운행 마감 시간이 5시 까지 란다. 아직 4.5km 이상 더 가야 하는데 남은 시간은 2시간. 곤도라를 못타면 버스를 못타는건 둘째치고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정말 이미 체력이 방전된 상태라 걸어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다. 무조건 곤도라를 타야 한다. 못타면... 정말 탈진해서 죽을 수도 있을거 같다. 다리가 정말 천근만근이다. 

 

내가 가야 할 왼쪽 봉우리들이 보인다. 백암봉, 중봉, 향적봉, 설천봉.... 까마득해 보인다. 

 

백암봉 도착.

중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남은 시간은 40분, 정말 죽을 힘을 내서 다리를 움직인다. 정말 힘들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 올라가는거 보다 더 힘든거 같다. 곤도라를 못타면 정말 내 자력으로는 이 산을 내려갈 수 있을가 자신이 없다. 도저히 못내려 갈거 같다.

 

향적봉 도착, 남은 시간은 20분, 둘러보고 감상 할 사이도 없이 바로 설천봉으로 전력 질주, 마지막 힘을 짜내서 뛰다시피 곤도라를 타기 위해 내달렸다. 다행히도  거의 5시 다되서 설천봉에 도착하여 곤도라를 타고 하산했다.

 

트렉 시작한 이후로 이번 처럼 고생한적은 없었던거 같다. 지리산 종주 했다고 덕유산은 좀 자만하게 생각한거 같기도 하다. 사실 만만하게 봤다. 기상도 그렇지만 오늘 컨디션도 왠지 안좋았던거 같다. 이미 오전부터 다리가 무겁기 시작하고 빨리 지쳐버리는 느낌 이였다. 정말 산은 조금도 방심하면 안되는거 같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많이 씁쓸해 진다..  버스에 타자 마자 바로 기절하듯이 쓰러져 잤다. 살면서 버스에서 이렇게 잠들어 본적도 처음이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보다(이번 트렉 후 주중 후유증도 상당했다.....) 

 

무사히 내려온거에 감사하고 방하트렉의 안전장치들에 또한번 감사한다. 사실 방하 트렉이 아니면 이런 종주는 시도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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