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일 토요일 전태일 열사70주기 추모일에 도전트렉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이날산행을 했다. 그렇다고 결코 잊지 않았음을. 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자 하는 이유를 새기며.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남덕유산(봉황봉 1507m)을(봉황봉1507m) 밟고 월성치~삿갓봉(1419m)~삿갓재 대피소~~삿갓봉(1419m)~삿갓재대피소 무룡산(불영봉1291m)~거북바위(칠이남쪽대기봉1420m)~동엽령~무룡산(불영봉 1291m)~거북바위(칠 이남 족대 기봉 1420m)~동엽령~칠연 삼거리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여정이었다. 실제 거리는 18~9km 정도로 예상하고 입산 시작 시간인 5시에 출발하면 오후 3~4시경에는 마칠 것으로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내린 첫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서 걸음은 더디고 몸은 힘들었다. 다양한 모습의 상고대를 보며 마음은 흡족했다. 속도를 낼 수 없어 타는 속을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을 입속에 녹이면서 시원하게 했다. 아주 오랜만에 눈을 실컷 먹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잠이 왔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간혹 저녁밥을 받아먹으면서도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오늘 하루 잘 놀았나 보구나 생각하던 기억이 났다. 내가 오늘 그러고 있었다.

 
가지마다 쌓인 눈은 참 시원했다.

 

금요일 오후에 찾아간 영각사는 건물 보수 공사중이라 스산한 분위기였지만 특이하게 화엄전이 중심에 있는 절이었다. 인사도 드리고 글귀도 읽어보고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았다.

영각탐방지원센터에 들러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내일의 남덕유산에 가득 쌓여 있어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정보를 듣고 준비물에 대한 안내도 받았다. 아래 주차장보다 영각사주차장이 화장실도 깨끗하고 가깝고 좋으니 이용하라고 알려주셨다.

 

덕유산은 공식적으로 5시에 입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동행이 허락된 도전트렉이라 4시 반에 만나서 반가움도 나누고 경행을 함께하고 출발하니, 530. 영각탐방지원센터 등산로입구 도착. 새벽 입산자들을 위해 도로에서 입구까지 가로등이나 안내표지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간산행금지 홀로그램을 지나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수리읽기를 시작했다. 둘 달 동안 홀로 시작하고 걷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시작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900m 이상을 오르면서 눈이 밟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길이다. 오늘 걷는 이들은 다리가 좀 짧구나 싶다. 열심히 걸어도 평균 보속 따라가기 바쁜 형편인데,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이용한다. 발은 무겁지만 스틱이 짧은 하체로 계단은 아니지만 계단처럼 오르는 길에 힘이 되어주었다.


 

오르막에 숨이 적응할 때쯤 온통 눈에 덮힌 남덕유산 전망대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한 손에 스틱을 모아 쥐고 한 손은 가드레일을 부여잡고 계단을 오르는데, 가드레일이 미끄럽다. 그래도 가슴 벌렁대지 않고 침착하려 수리를 외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재낀다. 그래도 함께 걷는 이가 있어 남덕유산 정상석을 맞이했다. 사진작가 두 분이 꽁꽁 언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다행이 정상석 글씨가 보이게 눈을 닦아 놓았다. 얼른 정상석만 찍고 바람을 피해 나무 밑에서 원밀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인증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남덕유산까지 보통 날씨엔 2시간 정도로 예상되는 시간이 3시간 넘게 걸렸다. 보통 눈길이 아니니 오늘 하루 단단히 걸어야겠다고 새기며 월성치로 향했다.

힘들게 오른 길을 다시 내려가다 삿갓봉을 100m 남겨 두고 다시 한참을 내려가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이 따뜻하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취사장에서 간단하게 점심요기를 했다. 좀 긴 거리를 가려는 이가 서둘러 출발하는 것을 보며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고개를 올랐다. 지나온 길을 보며, 오늘따라 산은 왜 굳이 긴 능선을 이루어도 좋을 텐데, 이렇듯 내려가고 오르도록 형성됐을까? 의구심이 자주 들었다.

반대 방향에서 걷기 시작하여 삿갓재대피소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앞으로 갈 코스는 쉽다고 묻지 않았는데도 말해주더니만, 그래서 혹여 긴 능선이라도 나올까 기대했는데, 꽝이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역시 산은 올라야 산이라고 무룡산이 가르치고 거북바위가 가르치며 마침내 동엽령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내리막 4.2km 코스다. 잠시 안전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출발지로 회기할 택시기사님과 통화를 하고 내리막 걷기를 시작했다. 간격이 일정한 계단을 내려가면서 살짝 왼무릎 바깥쪽에 통증이 왔다. 그럴 땐 살짝 옆으로 걸으면 괜찮다. 너덜길이라도 자연스런 길은 괜찮은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편한 길 같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어둔 새벽 들머리에서 오를 때와 반대로, 고도가 낮아질수록 길에서 눈의 흔적이 사라지더니 길 주변의 산에서도 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즈음, 어둠이 시작되었다. 다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1.2km 남은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시작할 때 경행을 함께 했듯이, 팔단금을 함께 하며 도전 트렉을 마무리했다. 꽉 찬 반달이 떴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쓴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Albany Free School Story)라는 책의 끝부분에, [어떤 연령대의 아이들과 만나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인적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학교 교사들에게만 한정되는 말이 아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가장 중요한 교사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야 한다. ] 는 구절이 있다. 도전 트렉을 시작하고 줄곧 내게 따라다니는 말이다. 자연이 나의 스승 일진 데 나는 때론 어떤 이유에서건 그 스승이 두렵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은 내가 두려운 것이다.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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